삼계면 생촌리 생촌(生村)마을
삼계면 생촌리 생촌(生村)마을
  • 김은정기자
  • 승인 2003.06.19 18: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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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촌리는 면의 북쪽 고산의 동남쪽 기슭에 위치한 성암, 생촌, 추동 3개 마을로 이루어졌는데, 생촌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9㎞ 떨어진 동남기슭 2개의 골짜기에 위치한 해발 130~150m의 사람형국을 한 동향마을이다.

원래 삼계면 일대엔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생촌(생말) 부근에도 고인돌이 6기 있는데 칠성바위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원래 7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장흥고씨가 조선초에 가장 먼저 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 후 1700년경 광산김씨, 1720년경 경주김씨, 1870년경 홍성장씨, 해주오씨, 초계변씨가 들어오고 6․25후 이천서씨, 영성정씨, 여흥민씨가 들어왔다.

원래 생촌은 무장현 원송면(전북 고창)지역이었는데 1915년 7월 1일 장성군 삼계면에 편입되었다. 속명인 생말(생마을)로 더 많이 불려지는데 무장(茂長)지역이므로 茂생말이라 부르기도 했다.

마을은 아랫뜸, 송정뜸, 고량뜸(새터, 서당잔등) 등으로 구분하며 72호가 살다가 6․25때 산골마을이라 피해가 커 80여명이 죽고 마을이 전소되었다. 그후 완전히 복구하여 64호까지 되었으나 1990년 41호였다가 현재 30호(고씨 10 여호와 광김 7, 장씨 4 등)가 살고 있다. 공동재산으로는 논3마지기, 창고 25평, 노인회관 18평, 농악기 1벌이 있다.

배출인물로는 김영택(가선대부 호조참판), 김상순(통정대부 사헌부감찰), 김기복(장릉참봉, 자는 시인, 호는 문암), 정귀님(효부상 수상, 마을에 효열부비가 세워져 있다), 고재현(고려고등학교교장)이 있다. 유물유적은 고인돌(지석묘,6기), 당산제(전남의 대표적 동제, 일본 등지에서 조사 실시), 고산성(城) 등이 있다.

생촌(생말)의 당산제는 해마다 정월 보름날 지내는 부락제이며 보통 당제모신다고 한다.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수령 500년이 지난 노송(천룡이라 부른다)에서 당제를 모시어 마을의 안녕과 길흉화복을 기원한다.

당제는 3명의 선택된 하주들에 의해 모셔지는데, 하주를 선발하는데도 꽤 까다롭다. 생기복덕이 맞아야 하며, 궂은 일, 궂은 음식을 먹어서도 안된다. 제사음식을 마련하고 차리는 일도 모두 남자들의 몫이며, 여자들은 접근이 엄금된다. 마을앞에는 타인의 출입을 막는 금줄을 오당산(천룡,당산나무,독당산,두개의 샘터) 곳곳에 친다. 보름날 자정이 되면 천룡에 올라가 제사를 지낸다는 뜻의 나팔소리가 울리면 집집마다 가랫불을 놓는데 여기저기 대나무가 탁탁튀는 소리가 굉징하다 한다.

그런데 6․25사변때 2년간 제를 모시지 않았더니 마을 어른들 꿈에 당산이 선몽하여 ‘배고프다, 추워죽겠으니 옷을 입혀달라’하므로 서둘러 당산제를 모시고 줄다리기를 하여 독당산에 줄을 감아줬다 한다. 그뒤 1980년 전남대 지춘산 교수의 제의로 제11회 남도문화제에 출연하여 민속놀이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90년 제향(祭享)에는 일본 오키나와대학 민속연구진등 여러번 조사를 해가기도 했다. 해마다 문예진흥공사에서는 100만원이 지원되고 있다.

또한 옛날에 팽나무(지금 이전의 것)가 고사하자 베어서 보를 막았는데 마을에 괴질이 퍼져 젊은 사람들만 20여명이 죽자 점을 쳤더니 “내가 죽은 자리에 가보면 내 자손이 있을 것이니 잘 가꾸어서 다시 당산제를 모셔라”는 점괘가 나와 가보니 새로운 싹이 돋아나 있었다. 그 나무가 자라 부러진 상태로 남아 있다가 15년전 고사하여 현재의 느티나무로 옮겨심었다.

생촌리는 현재 문화재 보존 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어 몇십년 후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의 맥이 끊길 위기에 있다. 또한 마을의 오당산중 으뜸인 천룡이 지난해 번개로 오른쪽 가지가 잘려나간채 방치되고 있어, 시급한 보호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촌리의 재미있는 지명

물방앳뜸 : 마을 입구 다리 옆
시래떡바우 : 마을 남쪽에 있는 바위
불바우 : 송정뜸 뒤에 있는 바위. 마을에서 이 바위를 보면 불이 나기 때문에 나무를 심어 바위를 가렸다.
도깨비 바우 : 다리 밑에 있는 바위
생애바우 : 물방앗간 위에 있는 바위. 상여처럼 생겼다.
영친 다랭이 : 마을 동북쪽에 있는 논으로 얹어져 있다.
두룽배미 : 마을 앞에 있는 논. 논이 커서 일하기가 힘들어 두런두런(불평)했다고 한다.
미친들 : 두룽배미 건너에 있는 논. 윗논은 569평인데 두마지기, 아랫논은 509평인데 서마지기라 해서 서로 바뀌었다고 미친들이라고 한다.
장구배미 : 보시랫들에 있는 논으로 장구처럼 생겼다.
보시랫들 : 다리 밑에 있는 논으로 보리가 잘되어서 보릿들이라고도 한다.
감투봉 :마을 앞 산에 가장높은 봉우리.

(장성군 마을사 참조)
<마을의 역사와 유래 designtimesp=10646>


<김은정기자 designtimesp=1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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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주 2024-01-22 15:20:15
소중한정보 감사합니다. 역사가 있는 마을 소식 잘 익히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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