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손님
귀한 손님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03.12.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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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 밤늦은 시각에, 가게문을 살며시 밀치며 수수한 차림의 앳된 여자와 남자가 들어왔다. 아리송한 미소를 지으며... 그 소님들은 진열장까지 곧장 들어와 눈인사를 수줍게 하더니 곧 남자손님은 손을 들어 쓰는 시늉을 한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망설임없이 종이와 볼펜을 진열대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얼른 보아선 다정한 연인같아 보이는데 보면 볼수록 싱긋 웃는 모습이 해맑고 순박했다. 그 무언의 손님들은 선물하려는 대상인 듯 "4개월 남자아이"라고 간단히 적고선, 숙제 다한 꼬마들 마냥 내쪽으로 슬그머니 밀어 놓는다.

그리고 주인의 안내를 무시한 채 바로 뒤돌아 서서 미처 골라줄 겨를도 없이 재법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서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금방 마음에 들었나 보다. 활짝 웃으며 앙징맞은 소라색 상하복 한벌을 골라와 사이즈를 확인하려는 듯 자랑스럽게 높이 들어 흔들고 있었다. 이미그 누구도 말릴 틈없이 왠만하면 맞다고...? 그것도 아주 잘 골랐다며 나도 덩달아 행복하게 권해 드려야 될 지경이었다. "참 잘 골랐습니다. 사이즈나 색감이나 가격까지도 싸고 적당한 것으로."

그나마 그대로 받으면, 예수님께 야박하게 장사한다고 한소리 들을까 봐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삼천원을 미련없이 떼고 가격을 적었더니만 매우 흡족한가 보다. 연신 고개숙여 대답하는 걸 보면...

또 무언가 아쉬었던지 제법 신명난 여자 손님은 종업원 마냥 가게를 한바퀴 휙 돌아서 구석에 걸린 비닐턱받이 하나를 같이 온 사람의 눈앞에 바짝 갖다 대며, 밥을 흘리는 아이 시늉을 열심히 하면서 사고 싶다는 듯 품에 꼭 껴안았다. 이내 그 남자는 별도리 없이 간절한 눈빛에 대한 응답으로 얼마냐고 종이에 적었다.

또 받을 만큼만 적어서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 지갑을 활짝 열고 몇장 되지도 않은 꼬깃고깃한 돈을 몽땅 털어준다. 참으로 받는 손이 망설여지고 미안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예쁘게 포장하는 손길이 바쁘다. 손수건과 양말을 살짝 얹어서 축복의 마음까지 담으려 하니 내 마음이 벌써 날아갈 듯 충만해진다.

어느새 말없이 귀한 손님들과의 짧고 오묘한 대화는 끝났다. 오랜 친구처럼 속내를 들켜 버린 우리들의 공모(?)를 마냥 즐거워하며 몇 번씩이나 고개를 깊이도 숙여 감사하고, 감사를 받는다.

첫눈처럼 귀하게 오신 손님들의 모습에서 비록 드러나지 않고, 한없이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정성"이란 이름 아래 진심으로 우러난 마음의 향기로 얼마든지 기쁜 선물이 되겠다는, 그래서 이웃에 카드 한장, 기도 한번, 희생과 선행으로 알찬 사랑의 꽃다발을 드릴 수 있길 바래어 보며 향기 그윽한 성탄 전야를 하이얀 수채화로 미리 그려본다.

빛고을 제1245호 中
이선례 체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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