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수고로움이 함께 함을
익어가는 수고로움이 함께 함을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1.10.17 21:45
  • 호수 8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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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실/ 장성군립중앙도서관 문예창작반, 전남백일장 장원 수상

태양 볕 아래에서 벼가 익어간다. 익어 갈수록 고개는 아래로 숙여지고 색깔은 더 선명하게 빛을 낸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도 익어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다. 벼는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 했다. 겸손의 대표적 표본이 다. 그래서일까? 벼는 추수할 때까지 늙음을 알 수가 없다. 벼는 겸손을 지양하듯 고개 숙여가면서 익어가고 푸르렀던 잎사귀들은 더 예쁜 황금빛으로 물들어 갈 뿐이다. 추수가 끝난 후에 보이는 지푸라기로 벼의 늙음을 깨닫게 된다. 겸손의 깨달음을 어여삐 여겨 그리 아름다운 생으로 마감되게 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보리는 달랐다. 대학 다닐 때 잠깐 자취한 적이 있었다. 국가고시 대비를 위해 한 시간의 통학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에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취 생활의 외로움을 보리를 보면서 이겨 냈었다. 자취 집 근처 조그마한 나대지 땅에 누군가 보리를 심어 놓았다. 추운 땅속에서 보리는 싹을 틔웠고 그렇게 올라오는 보리를 보면서 희망을 느꼈다. 보리는 봄볕을 맞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푸르고 곱게 자라더니 보리를 맺었다. 저렇게 예쁜 보리지만 농부의 수고로움이 함께 했으니 곧 추수하여 우리의 식탁에 오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농부가 아프셨을까? 싶게 보리는 누렇게 말라갔고 농부의 무관심 속에 죽어가는 보리가 안쓰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니 보리는 그렇게 누렇게 말라가는 과정 속에서 추수하는 것이었다. 보리는 그렇게 말라죽어 가는 것이 아니고 누렇게 마르면서 익어가는 수고로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보리의 익어가는 수고로움을 생각하지 못하고 말라 죽어간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안타까웠고 게으른 농부를 원망하였다.

태양 볕 아래에서 익어가기 위해 애쓰는 수고로움은 벼나 보리나 같을 것이다. 단지 보리는 말라가는 색으로, 벼는 황금색으로 각자의 현실 속에서 익어가는 수고로움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수고로움이 있어야만 질 좋은 결과가 생기니 견디고 견뎌내는 것이다. 풍족한 가을을 위해 익어가는 그들처럼 내 삶도 익어가는 지혜 속에서 발버둥 치는 중년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언제나 젊음만이 함께 할 것 같았는데 어느새 빠르게 지나가고 노년을 향하고 있다. 언젠가는 익어가면서 늙을 거라는 가까운 현실을 멀게만 생각했는데, 그리 멀지 않았고 금방 다가왔다. 젊은 시절 중년의 세월이 느릿느릿 천천히 오는 것이 아니고 지금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와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조금은 달라진 인생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곧 모든 들판에 벼들은 추수하여 사라져 갈 것이다. 이 아름다운 들판을 보면 곧 다가올 황량함이 같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이 예쁜 벼들이 한 쪽씩 사라져가고 황량함만이 남아 쓸쓸함을 안겨 주는 게 강해서인지 언제나 그 생각이 먼저 든다. 올해는 유독 천천히 추수되던 옛날 방식이 그립다. 지금처럼 기계로 금방금방 황량해지지 않고 손으로 더디더디 가던 옛날 방식으로 추수했으면 싶다. 그러면 들판의 황량함도 더디 올 것이니 말이다. 고운 자태로 사라져 가는 벼들이 더 곱고 예쁘게 보여서인지 느릿느릿 추수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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