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맺힌 독립운동가의 후예
한 맺힌 독립운동가의 후예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1.06.07 21:00
  • 호수 8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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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1일은 의병의날이고, 66일은 현충일이며 610일은 6.10 민주항쟁기념일 그리고 625일은 1950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6.25 참전 희생자의 유가족과 참전군인 그리고 1980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부상자, 6.10 민주화 항쟁 부상자와 구속자, 월남전 참전군인 등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 때 대부분의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헌납하고,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의 자손 중에는 사회주의자 또는 월북이라는 이유로 서훈자에서 배제되었거나 연좌제에 걸려 취직도 못한 사례가 너무나 많다.

얼마 전 장성읍에 거주하는 80세가 넘은 한 노인이 족보를 들고 신문사에 왔다. 노인은 기억조차 아물거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종조부(할아버지의 동생)와 관련한 얘기를 해 주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김종선 선생이 바로 노인의 종조부이며 평생 동안 자신이 가장 미워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1960년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노인은 공무원에 임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종조부인 김종선 선생 때문에 신원조회에서 탈락한 것이다.

김종선 선생은 홍문과 교리를 지낸 금초 김진호 선생(1847~1916)의 손자로 장흥과 광주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김진호 선생은 29세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지금의 외교부에 해당하는 승문원에서 외교문서를 다루는 일로 관직을 시작하여 왕의 자문기관인 홍문관에서 교리를 지냈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도 그의 집안은 천석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본채는 아름드리 기둥에 큰 기와집과 여러 채의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김종선 선생은 1926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재판을 받은 기록이 남아 있으며 장흥에서 교사로 재직할 때도 장흥사람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전하여 그의 제자 가운데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장흥 이승례씨가 자신의 선친이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선친의 스승이 김종선 선생이라며 필자에게 선생의 발자취를 찾으며 확인되었다.

김종선 선생은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하였지만 독립군에게 독립자금을 마련해 주는 역할 등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인이 어렸을 적에 작은아버지에게 들은 말이라며 곡간에 쌓아둔 나락이 한꺼번에 백석 이상 구루마에 실려 나가기를 여러 차례 있었다그럴 때마다 김종선 선생이 찾아와 한밤중에 돈으로 짐작되는 가방을 들고 나갔다며 그 돈이 독립자금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해방이 되고 좌우 대립이 한창일 때 김종선 선생은 가족을 데리고 북으로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북에서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하는 평양인민학습당 관장을 지냈으며 평양에 있는 월북인사 62명 묘역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남쪽에 남아 있던 김종선 선생의 조카 등 가까운 일가친척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모두 엄청난 피해자가 되었다. 그의 집은 이유없이 불태워졌고, 남은 가족은 모두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서도 변변한 직장에 취직마저 할 수가 없었다.

공무원에 임용되지 못해 기업에 취직한 노인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불려가 북에서 연락이 오면 신고하라는 말을 들었고 늘 자신이 감시대상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김종선 선생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신학문을 공부했고, 남부러울 것 없는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독립을 위해 싸웠고,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월북하여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다. 하지만 선생이 월북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의 종손(從孫)까지도 고향을 떠나 살면서 원하는 직장조차 얻을 수 없었다. 노인은 지난날의 고생을 회고하듯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는 나라를 위해서 싸운 훌륭한 분이었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일생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바로 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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