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체벌을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로 인식되던 민법 제915조 ‘자녀징계권’ 조항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시행 3개월이 지났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체벌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이 같은 사실을 모르거나, 아이들의 훈육을 위해선 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정당화 막고, 아동 권리·인권 보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최근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부모 중 66.7%는 자녀징계권 조항 삭제로 부모의 자녀 체벌이 금지됐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민법상 징계권의 개념을 알고 있었
냐는 물음에도 학부모·자녀 모두 80% 이상이 ‘모른다’고 답했다. 해당 인식조사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자녀와 학부모 600명(300가구)을 대상으로 했다.
대한민국 민법 제915조는 징계권에 대한 민법 친족법 조문으로,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게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은 아동학대 가해자인 친권자의 항변 사유로 이용되는 등 아동학대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어, 징계권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이를 방지하고 아동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조항 삭제 이후 체벌이 사라졌다고 느끼거나 기대하는 아이들도 많지 않았다. 설문에서 ‘집이나 학교에서 체벌이 사라질 것’이라고 답한 자녀는 30.3%에 그쳤다.
그런데 ‘징계권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부모의 60.7%는 ‘징계권 삭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해 과거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50.3%는 ‘훈육을 위해 체벌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가정은 사적 공간 아니라 ‘공적 공동체’, 민주적 부모 돼야!
교육시민단체 ‘민주주의학교’(상임대표-송명주 한신대 교수)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징계권 조항 삭제를 민주적 가정교육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녀 체벌의 법적 금지를 부모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며, 민주적 가정교육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보급하고 부모 교육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아동학대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고 인식하지만, 훈육을 위해서라면 ‘사랑의 매’를 기꺼이 들 수 있다는 인식이 아직도 사회 저변에 강하다”고 지적하면서 “아동학대와 ‘훈육 체벌’의 경계는 모호하며, 체벌은 학대로 이어질 수 있는 폭력”이고 “아동은 어떠한 폭력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하는 존엄한 인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민주주의학교는 가정이 순수한 ‘사적 공간’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사회 전체와 함께 호흡하면서 키워내야 하는 건전하고 민주적인 ‘공적 공동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교육의 기본 방향으로 △체벌 금지 △학대 금지 △민주적 부모 되기 △민주적 가정교육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