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내 마음의 더께
수필 - 내 마음의 더께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1.01.24 21:54
  • 호수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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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자 <군립도서관 문예창작반 회원>

 

요리연구가 이혜정 씨가 강연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툭! 내뱉는 말에 귀가 번쩍 띠였다. “나는 인물이 별로여서 나이로 점수를 좀 얻을까 해서 20대 초반에 결혼했다고.” “그래? 나도 20대 초반에 결혼했는데 점수 따서 어디다 썼지?” 그렇게 빨리 결혼해서 얻은 게 무엇이란 말인가?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몇 번 하고 나니 이 바보!’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분처럼 큰 명성을 얻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남들이 갖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가질 수 없는 든든한 버팀목인 금쪽같은 새끼를 다섯씩이나 가졌다. 그리고 순박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실천으로 가르쳐주신 훌륭한 시부모님 밑에서 여섯 해 동안이나 농부의 삶을 경험해본 행운아 아닌가? 그 경험들은 활자의 옷을 걸치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나는 날마다 방 콕 하는 무료함도 잊고 연료장착에 여념이 없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은가?

최근 몇 년 동안 따뜻한 겨울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지구 온난화니 뭐니 하면서 스키장은 인공 눈 만들 비용을 걱정했고, 농부는 겨울에 눈이 안 오면 내년에는 병충해가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불평했고, 어민은 수온이 올라가면 제철고기가 몰려오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하늘이 어떤 존재인가? 어리석은 우리는 눈앞에 굴러들어온 복을 알아채지 못한다. 나 역시 어리광을 받아만 주는 친정엄마한테는 평생을 배워도 못 배울 많은 일을 시댁에서 배우고도, 시집살이의 불편한 점만 내세웠다.

세월은 철없는 나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할머니로 만들어 줬다. 하얗게 쌓인 눈길을 손주의 손을 잡고 걸었다. 유치원에 등원시키기 위해서다. 손주가 말했다. “할머니, 까치가 눈을 먹어요. 배가 고픈가 봐.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자꾸만 눈을 쪼아 먹어요. 눈에도 영양가가 있는가 봐요?” 한다.

눈 속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을 보니 막 시집가서 보냈던 겨울이 떠올랐다. 누군들 뱃속에서부터 일을 배워서 나올까마는 나는 유달리 서툴렀다. 지금은 돌을 고르는 기계가 있어서 챙이 질을 할 필요가 없지만, 그때 만해도 밥을 하려면 챙이 질을 해서, 덜 빠져나간 왕겨도 내보내고 싸라기도 받아 내야 했다. 챙이 질에 서툰 나는 일의 순서를 바꿔서 어른들 몰래 얼른 쌀부터 까불어 둔 다음 군불을 때고, 마루도 닦고, 하루를 마감할 준비를 했다. 꾀를 부려 어른들을 속였다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는 며칠이 못 가서 알아차렸다. 잠자러 들어가기 전에 모이를 달라고 시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닭들이, 시어머니를 외면하고 도랑에서 물만 몇 모금 마시고 닭장으로 들어간 것이 시어머니가 눈치채게 된 계기가 됐다. 내가 챙이 질을 할 때면 쌀을 하도 많이 흘리니까 그것만 주워 먹어도 배부른 닭들이 그냥 잠자리로 직행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몰래 챙이 질을 하는 나에게 시어머니께서 다가오셨다. “챙이 질이 이제 좀 늘었능가 싶었는데 아직 멀었구나. 챙이 끝에서 내년 병아리 먹이로 사용할 싸라기는 받아 가며 흘려라고 웃으셨다. 그런 인자하신 시어머님이 작고하신지도 벌써 삼십여 해가 흘렀다. 손주와 까치의 겨울 먹이를 걱정하면서, 문득 시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서 내 가슴은 시린 눈을 한 삽 덮어놓은 것 같았다. 내가 챙이질 하면서 싸라기를 흘려도 야단치지 않으셨던 시어머니의 깊은 속을 오늘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두어 달 뒤부터는 산과 들에 새들의 먹이는 동이 난다. 그러면 집 주위의 대나무와 울타리에는 온갖 새들이 노래를 잊은 채, 식량 걱정으로 대책 회의를 하느라 재잘거리는 소리가 귀를 어지럽힌다. 그때 챙이 질이 서투른 나는 그들의 구세주였다. 뒷마당에는 어미 닭과 새들의 황금어장이 펼쳐졌던가 보다. 시어머님은 나눔의 아름다움을 새댁한테 가르치셨다. 그때는 시어머님의 눈을 피하기 바빠서, 그 깊은 철학을 깨우치지 못하고 넘겨버렸다. 철학자를 옆에 두고 책에서 현인을 찾으려고 호롱불을 밝혔나 보다. 나의 크나큰 실수는 다른 사람 모르게 얼른 감춰 주시고, 조그만 잘한 일은 일가친척에게 널리 자랑해 나의 기를 살려주셨던 시어머님, 그런 시어머님의 마지막 소원을 애써 외면한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끄럽고 송구스러워진다.

시아버님을 먼저 보내드리고 외로우셨던 시어머님은 차남인 우리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평소에 시누이들에게 말씀하셨단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다섯이다. 그런데 형님은 애들이 3명인데다, 다 커서 집이 복잡하지 않았기에 누가 봐도 형님이 모셔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 장남이니 더더욱 모셔야 하고…….그런데 결과가 너무 비참하게 나타났다. 식구가 적은 형님 집은, 시골에서 평생을 논과 밭을 헤집고 다니셨던 시어머님께는 적막강산이었다. 날마다 같은 치마를 빨았다 말렸다만 반복하시던 시어머님은 치매가 와버렸다. 밤새워 벽을 찢고, 책을 찢으며, 옷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하시는 안타까운 병세를 지켜보며 나는 괴로웠다.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는 그 일을 왜 못했던가? 부모님을 모시는데 장남이면 어떻고, 차남이면 어떤가? 누구나 살아가면서 더께 하나쯤은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나처럼 내 몸 아끼느라 만든 더께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아닐까? 부끄러운 더께는, 하얀 눈 속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을 보면서 더 까맣게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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