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의 죽음과 미투
김기덕의 죽음과 미투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0.12.22 09:09
  • 호수 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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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연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천재 조각가로 186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마흔한 살이던 로댕을 만나 조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천부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카미유는 로댕의 대작들을 만드는 일을 함께 할 정도로 천재적 소질을 가졌다. 로댕은 카미유를 만나 작품에 영감을 얻었고, 작품에 대한 열정도 커졌지만 어린 제자와의 스캔들과 제자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덮기 위해 모델들과 바람을 피웠다. 카미유는 자신의 작품이 스승 로댕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할까 두려웠고 자신이 로댕의 소모품이 아닌가 의심했다. 카미유는 스승이자 연인이던 로댕에게서 독립하여 창작활동을 시작했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해주는 평론가도 없었고, 오히려 여자가 조각을 한다는 편협된 시선만이 있었을 뿐이다. 로댕은 카미유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썼지만 카미유의 홀로서기는 실패했고, 점점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그녀는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아 194379세를 일기로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감하였다. 사람들은 근`현대 예술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천재 조각가로 카미유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018년은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추문과 함께 우리나라 문화`체육`예술계는 말할 것도 없고 교수사회와 종교계에까지 미투운동이 확산되어 파장이 적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수상후보자로 올랐던 시인 고은은 후배 시인들의 미투 고백으로 시정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연출감독 이윤택은 잇따른 배우들의 성추행 폭로로 구속되고 말았다. 배우 조민기는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여학생들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 성추행했다는 미투 폭로가 이어지자 학교에 사표를 내고 자살하고 말았다.

`박사 과정에 있는 여학생에게 학위와 유학을 미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폭로는 물론 논문심사가 끝난 뒤 함께한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도 여러 건 있었다. 문화계와 학계는 물론 체육계의 고질적인 스승과 선배의 성폭행 또는 성추행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무덤덤하게 만들 정도로 고질적 병폐로 지목되기도 했다.

지난 11일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한 김기덕 감독은 2004년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은곰상, 2012년에는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국제 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한 김기덕감독에게 한국 언론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았다.

2017년 김감독은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연기지도라는 이유로 배우 씨를 폭행하고 대본에 없는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는 의혹으로 고소당했고, 2018년 문화방송 <피디수첩>은 그가 여러 명의 영화계 종사자들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김감독은 문화방송을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에 다른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고, 한국을 떠나 리투비아에서 정착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감독이 리투비아로 가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그의 사망 소식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억울했든지 양심상 부끄러웠든지 아니면 창작활동을 위해 새로운 세상이 필요해서였든지 한국을 떠났고, 정식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열악한 환경을 딛고 세계적으로 한국의 영화를 알린 그의 마지막 인생을 그렇게 쓸쓸히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재 조각가 카미유의 삶에서 엿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재능과 뛰어난 열정보다 한 사회구조의 카르텔이 지배하는 엄청난 힘이 너무 크다는 현실이다. 우리나라 문화`체육 그리고 예술계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미투사건의 본질은 바로 기득권이 갖고 있는 권력이다.

예전에는 스승에게 무조건 복종해야하는 구조와 풍토가 여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도교수에게 찍히면 영영 학위를 받지 못하거나 학위를 받아도 시간강사도 바라보기 어려웠던 건 남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추행이 한 두사람의 일탈에서 일어난 행위가 아니라 제자나 후배를 평등한 인권,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병폐가 만든 비극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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