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사는 사람들의 황금빛 글 창고’ Ι
‘거꾸로 사는 사람들의 황금빛 글 창고’ Ι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0.12.22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립도서관 문창반 수강생들, 작품으로 세상을 녹이다
박형동 전남 문인협회장
박형동 전남 문인협회장

전남백일장, 광주시민백일장 등에서 주요 상을 휩쓸며 문불여장성을 알리는데 큰 몫을 하고 있는 장성군립중앙도서관 문예창작반 수강생들의 작품을 2주에 걸쳐 소개한다.

군립도서관 문예창작반을 지도하고 있는 박형동 시인은 수강생 대부분이 70~80대지만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와 글쓰기에 집념을 보여주셨다코로나 19 기승으로 도서관 수업은 진행이 어렵게 되었지만 식지 않는 문학적 열정으로 거꾸로 사는 사람들의 황금빛 글 창고라는 문집을 내게 되었다고 말했다.

15명의 군립도서관 수강생 중 김애자 씨는 수필과 시로, 박정애 씨는 시인으로 2019년 등단했다.

장성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전남 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형동 시인은 대답하지 않아도 부르리라5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지난 2015년에는 장성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장성군 홍보대사와 장성문협 대관 편찬위원으로서 장성문학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

 

 

 

노을

 

강효심
강효실

 

누군가 SNS에 부안 솔섬의 노을을 찍어 올려 자랑이다. 부안은 서해안이라 해넘이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이곳 솔섬은 잘만 찍으면 소나무가 용의 입 모양이 되고 해가 여의주가 되어 용이 여의주를 무는 모습으로 더 유명하다. 그런 그곳의 노을은 멋지다는 환호를 듣기에 충분하다. 해를 물기에는 용의 입이 작다는 누군가의 유머가 무색할 뿐이다. 그런 노을이지만 나는 부럽지 않다. 그곳만큼이나 예쁜 노을을 매일 보고 사는 행운을 가졌으니 말이다. 내가 사는 장성 남면 또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멋진 노을을 가진 곳이다.

남편이 시골로 귀농하자고 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귀농하면 내리쬐는 자외선에 피부는 검붉어지고 빨리 늙으며 바람에도 트는 손이 될 것 같았다. 거기에 혐오스러운 쥐와 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요즘은 기계가 다 하는 세상이라 할 일은 많지 않고, 요즘엔 시골에도 쥐나 뱀이 없다고 했다. 그런 감언이설도 좋았지만, 직접 와서 본 날 나를 맞아준 노을빛에 반해 나는 귀농을 결정하였다. 저녁 무렵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주홍빛으로 물들이는 하늘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삶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밭작물이 아니고 과수에다 기계가 다 해서 할 일이 없다던 시골 일은 끝이 없었다. 이 정도면 쉬겠지, 싶으면 또 해야 하는 일이 나오고 자라지 않으면 좋을 풀은 과수보다 더 신나 하며 자랐다. 과수원 조성에서부터 심기, 수확까지 모든 게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다 못해 풀 뽑기를 포기하고 부직포를 씌우니 부직포 고정을 위해 꽂아야 하는 핀 꽂기도 힘들고 겨울에 해충 방지 위해 다시 뽑아야 하는 일도 힘들었다. 기계를 써서 예전보다는 쉽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이 하는 일이 더 많았다. 또 여름에 갑자기 나타나는 뱀을 봐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내가 50대 중반까지 살면서 본 뱀보다 시골 생활 5년 동안에 보았던 뱀이 더 많으리라. 자주 보는 뱀이라 이제는 정들어 대화라도 하고 싶다는 농담도 해 보지만, 아직도 뱀에는 적응이 안 되고 두근거리는 맘 진정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모든 게 내가 예상했던 생활이 아니었다. 첫해에는 옥상에 올라가 드러누워 밤하늘을 보는 여유가 있었지만, 갈수록 옥상까지 올라가는 일이 힘들어졌다. 힘들어 못 올라가고, 내일 일찍 일할 것을 생각해서 못 올라간다. 시골로 오기 전에 꾸었던 로망은 사라지고 지쳐가는 생활에 힘들 때가 더 많아졌다.

그렇게 힘들다가도 해 질 녘이면 보이는 우리 동네 노을은 힘들다는 생각을 한 방에 녹이는 마력이 있다. 수줍은 듯 타오르는 노을은 주변 하늘을 품듯이 나를 감싸 안으며, 내 등을 토닥여 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나에게 지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우체부 색깔의 노을이 된다. 우리 동네 노을은 용의 여의주가 아닌 용이 뿜어내는 화염처럼 빛나는 노을이다. 나의 시름 다 가져가는 사랑스러운 노을이다. 나는 이 노을이 좋아 귀농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버지

김재현
김재현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도

기둥이 되고 둑이 된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집에서는 다 부자다

 

일생을 농사꾼을 사신 아버지

억척으로 버티며

찬바람 막아주고

책가방 메어주고는

애비의 희망이라 하였다

 

자고 나면

논밭에서 사시는 아버지

아파트값 올라도 관심 없고

소출에만 온 힘을 쏟아도

식구를 건사하기 어려웠다

 

큰누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도회지 공장으로 가던 날

등 돌리고 서 계신 아버지

한숨은 산보다 더 컸다.

 

 

필암서원 산책

 

정영의
정영의

 

 

 

 

 

 

 

 

애기 주먹만한 풋감이

풀빛 물감처럼 뒹굴고

내 키만큼 큰 참깨의

여윈 잎에 알이 여물고

샛별 위로 깜빡깜빡

비행기가 눈짓하는데

어스름 비 내리는 날

어둑한 경내에 뵈는 건

곁에 동무를 안 두는

()()한 소나무뿐

동무라도 하나 있으면

차 한 잔을 나눌 텐데

문 굳게 닫힌 서원에서

호롱불 하나 밝혀두고

번을 서는 신참 선비가

오늘의 서책을 읽는다.

 

 

때 이른 동백꽃

 

박순임
박순임

 

 

 

 

 

 

 

 

날이 밝으면 사라질 듯

아스라한 그리움인 듯

 

빨간 동백꽃이 너울을 벗고

달빛에 맨살을 드러냈네

 

햇살이 비추면

황홀하여 눈 못 뜨겠네

 

고요해 말이 막히네

너무 고와 숨이 막히네

 

 

봄날

유소희
유소희

 

 

 

 

 

 

 

 

 

 

어느 계절이든지

꽃을 피워낼 수 있으면

그때가

봄날이리라

 

겨울에 피어서

더욱 더 예뻐 보이는

동백꽃처럼

 

나도

이 시린 겨울에

꽃을 피우고 있다

 

나에게도

겨울은 봄날이다

 

 

서리

 

박화연
박화연

 

 

 

 

 

 

 

 

 

서리가 내리지 않으면

겨울이 건너오지 못하지

 

라떼처럼 살포시 내려

반짝반짝 빛을 품으면

 

따스히 녹을 때까지

세상은 떨고 있지만

 

서리가 내리지 않으면

서리태가 익지 못하지

 

모과도 익지 못하지

깊은 향을 내지 못하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