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는 길이라면 발목 잡을 이유가 없다
혼자가는 길이라면 발목 잡을 이유가 없다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0.11.29 21:47
  • 호수 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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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은 생전에 화장지 한 장까지도 재활용을 해서 자식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더더욱 음식을 남기는 일은 없었으며 절약과 검소가 몸에 배어 단돈 십 원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렇게 절약하여 자식들을 가르치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손주들에게 결혼할 때 보태쓰라고 통장 하나씩을 남겨 주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가난과 배고픔을 경험한 세대에게 행복이란 그저 가족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춥지 않게 지내며,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196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천달러에 불과했으나 60년 후인 2020년인 현재 1인당 소득은 3만달러를 초과하였으며 세계 30위 안에 들어가는 선진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잘사는 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연간 3천만원을 훨씬 웃도는 나라에 사는 그대는 지금 행복한가? 영양실조, 질병, 문맹, 불결한 환경, 낮은 기대 수명 등 절대적 빈곤인 상태에서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소득과 건강 그리고 교육여건이 나아졌다고 반드시 행복할 수는 없다. 객관적 조건이 행복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람의 가치와 신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속에서 느낀다고 한다. 혼자서 넓은 저택에 살며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는다고 해도 만족감을 느낄지언정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바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런던대학 연구팀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 가운데 가장 값이 나가는 것은 우정과 성공적인 인간관계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로 이웃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6천만원의 연봉만큼 행복지수를 높여주고, 배우자를 잃으면 29000만원의 연봉이 줄어드는 것과 같다고 조사되었다고 한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와 함께 각자의 가치와 신념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민주주의는 각자의 가치와 신념 그리고 주장이 다름을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가치와 신념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합리적 접근을 이루어내야 한다. 나와 생각이 같지 않으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며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가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앞에서 행복은 관계에서 가장 크게 얻어지고, 다음으로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펼칠 때라고 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발목잡지 마라이다. 고 이건희씨가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했던 발언을 한 지역신문에서 보도한 뒤에 유군수의 시정연설에서도 인용되었고,이를 두고 모 지역인터넷 신문에서 비판의 글을 썼다.

발목잡지 마라를 검색했더니 공공의대 발목잡지 마라유치원3법 발목잡지 마라‘’예산안 발목잡지 마라‘ ’안보로 발목잡지 마라‘ ’국회는 정부에 발목잡지 마라등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표현은 매우 잘못되었다. 혼자 떠나는 길이라면 산으로 가든 들로 가든 아니 바다로 가든 발목을 잡을 이유도 없고, 잡힌다고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이도 아니고 말이다.

어떤 법안이나 정책 그리고 국가적 사업은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의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저항도 하는 것이다. 그건 작은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조례나 규칙의 제정과 개정 그리고 예산이 수반되는 정책은 군민들의 공감과 참여를 통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3만 달러 시대에 군민들은 동네 앞에 작은 정자를 하나 지을 때도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민주주의란 소수의 목소리, 소수의 의견도 무시하지 않는 다양성의 존중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발목잡지 마라는 표현은 독단과 독선에 빠질 위험이 큰 반민주적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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