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미래의 먹거리 '문화가 답이다'
장성 미래의 먹거리 '문화가 답이다'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0.09.27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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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고장 장성, '차박물관' 장성 브랜드로 만들어야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

당나라 때 중국 선불교를 크게 일으킨 조주종심(778~897)선사는 공부하는 납자들이 찾아와 질문을 하면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喫茶去)”라고 대답하여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조주선사는 한 수행자가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모두 내려놓아라(放下着).”고 답하자 다시 수행자가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얼 내려놓으라는 말입니까?”라고 되묻자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거라(着得去).”라고 대답하여 방하착(放下着)이 선불교에서 공부하는 수행자들에게 중요한 화두가 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스님들은 차를 마시는 일을 수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여겨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차를 좋아하고 즐겼다. 절에서는 차를 달여서 대중에게 바치게 하는 일을 맡아 보는 스님을 다각(茶角)이라 불렀는데 이 또한 중요한 소임 중에 하나다.

특히 우리나라 사찰에서 차를 즐겨 마시던 곳은 해남 대흥사와 순천 송광사, 고창 선운사, 구례 화엄사 그리고 장성 백양사 등 전라남도에 있는 사찰이었다. 이는 차나무의 속성이 추운 지방에서는 자라지 못하여 차나무의 북방한계선을 전라남도 장성과 전라북도 고창까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또한 장성 백양사와 고창 선운사는 한 때 하나의 문중으로 이루어져 교류가 활발하였던 것도 두 사찰의 차와 관련한 제조, 차밭 조성 등은 흡사한 점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에서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세 분이 있는데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 그리고 백파긍선(1767~1852)으로 백파선사는 선운사에 주석하며 호남불교를 크게 일으킨 인물이다.

백파선사의 제자가 독립운동가이기도 한 석전 박한영스님이고, 백양사의 중흥조인 만암대종사가 바로 석전스님의 제자이므로 만암대종사는 백파긍선의 손주상좌가 된다.

<장성군의 야생차>

백양사는 아직도 1만여 평의 야생차밭이 있으며 해마다 차 잎을 따서 차를 만들고 있으며 한 때는 고불선차(古佛禪茶)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백양사는 조선시대 진묵(震默)스님이 임진왜란 직전 운문암에서 차를 달이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체 대중스님이 차를 달이는 운문암 중을 조실(祖室)로 모시라는 현몽을 한 뒤 진묵스님을 큰절에 최고 어른으로 모셨다는 일화가 있다. 백양사와 차와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백양사 방장을 역임한 수산 지종대종사(1922~2012)는 선운사와 백양사의 차를 마지막으로 전수한 분으로 알려졌다. 지종대종사는 녹차는 물론 떡차 등 다양한 차를 제조하는 비법을 전수하였다.

지종스님은 생전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차를 마시는 일도 수행의 방편이야. 평상심을 유지해야 진향(진실한 차향)을 느낄 수 있지. 차도 선에서 나오고, 차 마시는 것도 선에서 나오니 차와 선이 둘이 아니지. , 차 한잔 드시게라고 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장성군의 야생차 밭은 삼계면, 동화면, 남면 등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남면에는 한국제다에서 차밭을 일구어 차를 생산하고 있다. 장성은 보성, 광양, 하동, 해남, 강진 등과 함께 오래 전부터 차를 생산하였다는 기록과 흔적들이 남아있다.

한편 삼계면 희뫼요 김형규 작가 등이 인근 야생차밭에서 차를 따서 장성의 차를 전수하고 있고, 금곡마을 세심원 변동해 원장이 장성의 야생차를 전수하고 있다.

<차와 문화>

차는 승려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삼국유사에는 ‘661년 술을 빚고 차와 떡, 과일 등을 차려 수로왕의 묘에 제향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남산 삼화령 미륵불에 차를 올리고 경덕왕에게 차를 올린 충담스님이 화랑 출신이었다고 하였다. 신라 때는 왕실과 귀족 그리고 승려들 사이에 차를 마시는 일이 유행했으며 고려시대에 와서는 평민들도 차를 마셨다고 전한다.

고려 시대에는 궁중의 행사는 물론 손님을 접대할 때도 차를 마셨다고 전하며 차에 관한 일을 전담하는 [다방]이라는 관청이 생기기도 했으며 차의 대중화는 고려청자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조선시대 때는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예물에 차와 차씨를 봉해 넣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봉차(封茶)라고 하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차문화의 명맥이 거의 끊어져 야생차나무가 있는 전남과 경남 일부의 사찰에서 승려들만이 차를 마시는 문화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19세기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그리고 초의선사와 백파선사 등이 차문화를 부흥시키고, 차와 관련한 저서를 남겨 지금의 한국 차문화를 이루게 되었다.

차는 차를 마시는 다구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임진왜란 무렵에 일본은 차문화가 크게 부흥하였으나 다구를 만드는 도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일본으로 강제 납치된 우리나라 도공이 1천여 명에 이를 정도였으며 일본인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차와 관련한 다구와 물품>

차를 마시려면 물을 끓여야 하고, 차를 우려내는 그릇과 차를 마시는 그릇 등이 있어야 한다. 신라시대에는 차를 우려내는 도구가 대부분 철로 만들었던 것으로 전한다. 물을 끓이는 화로는 물론 철제 다구에 찻물을 우려냈다.

화로와 다구는 물론 차 숟가락까지 차와 관련한 다구는 차를 즐기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다. 뿐만아니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림이나 글씨도 차방에 중요한 장식품중에 하나다.

차를 마실 때 마주 앉는 찻상도 크기와 모양새가 다양하고, 차의 종류에 따라 차를 우려내는 탕관도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하동군에 매암차문화 박물관이 있고 보성군에 한국차박물관, 김포다도박물관 그리고 제주도에 오설록 차뮤지움이 있으며 차와 관련한 다구와 물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장성에 차박물관을 세운다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장성은 오래전부터 차나무를 재배하여 차를 생산하였고, 백양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차를 만들고, 차문화를 보급하는 등 차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곳이다.

또한 장성군 여러 곳에 야생차나무가 분포해 있어서 쉽게 차나무와 접할 수 있으며 차나무의 재배에도 적정한 지역이다.

그런데 차박물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차와 관련한 유물이나 물품을 수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도자기류인 백자, 청자, 토기 등과 금속류인 화로, 풍로, 찻숟가락 등과 목기류인 휴대용 다기함, 판각, 전각, 다례상 등 적어도 수백 점 이상이 있어야 전시관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런 유물 또는 물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 박물관을 신축하겠다며 물품을 기증해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공립박물관 또는 미술관의 신축을 까다롭게 만들어 공립박물관의 신축도 어려울 뿐 아니라 박물관을 신축한다고 해도 내용물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황룡면 아곡리에 600억 원의 혈세를 투입해 조성한 홍길동테마파크는 청백한옥과 오토캠핑장 외에 테마파크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홍길동 전시관은 보수비만 투입될 뿐 1년 내내 방문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홍길동테마파크는 동학혁명 전승 기념탑과 필암서원과 그리고 아곡 박수량 백비로 이어지는 문화유적 투어에서 중요한 휴식처로 활용할 수 있으며 축령산 휴양림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관광지로 이용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따라서 홍길동테마파크의 변화가 절실한 실정이다.

무용지물로 전락한 홍길동 전시관이나, 테마파크 관리 사무실로 쓰던 건물은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

오승택 선생

<장성의 차 박물관과 오승택선생>

장성읍 기산리 해주오씨의 집성촌이었던 마을에 고등학교를 정년퇴임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차모임을 하며 유유자적하고 있는 오승택선생이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놀랍게도 거의 50년 가까이 수집한 차와 관련한 도구들과 수석, 서화 등 수천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오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과 애장품은 대부분 차와 관련한 철제류인 화로, 탕관 등과 도자기류인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 그리고 최근에 한국인들이 선호하고 있는 보이차와 관련한 자사호 등이다.

대부분이 전국은 물론 해외에까지 가서 한점한점 모은 소중한 것들이라고 한다. 당초 고향마을에 차 박물관을 짓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교유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고민을 하던 중에 영암군과 광주의 모고등학교에서 박물관을 건립할 뜻을 밝히며 기증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 오승택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소장품으로도 차 박물관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이니 기증을 조건으로 여러 제안을 받고 있다. 하지만 평생 모은 애장품을 고향에 남기고 싶은 그의 바람이기도 하다.

“50년 동안 모은 작품들을 경제가치로만 생각한다면 팔아서 돈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쉽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오선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차 박물관이나 문화관이 있으면 첫째 좋은 사람을 사귀는 장소가 되고, 둘째, 차와 관련한 여러 다구와 차상 등의 발전을 가져오고, 셋째 차방에 분재나 수석, 고가구나 서화 등이 갖추어져 다양한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게 된다고 말한 오선생은 꽃꽂이나 향도 차방에 중요한 메뉴다. 그래서 품격을 갖춘 차방에서 차를 마시고 사람들과 교유하는 일은 종합예술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소장품이 장성군에서 전시되고, 전시관을 중심으로 장성의 문화가 확산되어 장성의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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