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가장 존중했던 학자 권철신의 유적지
다산이 가장 존중했던 학자 권철신의 유적지
  • 장성군민신문
  • 승인 2020.04.26 21:07
  • 호수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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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횡포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1801년의 신유옥사(辛酉獄事)는 천주교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사건입니다. 진짜 천주교인의 죽음도 슬픈 일이지만, 가짜뉴스에 근거하여 죽임을 당한 억울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억울한 사람의 대표자야 당연히 정약전·정약용 형제지만, 그래도 그들은 옥사(獄死)는 당하지 않았습니다. 다산이 꼽은 대표적인 억울한 죽음으로는 녹암 권철신(權哲身:1736~1801)과 정헌 이가환(1742~1801)이었습니다. 다산이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평생의 작업으로 자신의 일대기인 「자찬묘지명」 두 편을 기술하고 자신의 일생 못지않게 반드시 세상에 전해지게 해야 할 대표적인 인물 두 분인 「녹암권철신묘지명」 과 「정헌이가환묘지명」 이라는 대문자를 남겼습니다.

 

자신과 중형인 정약전의 일대기에서 당연히 자신과 중형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음을 누누이 밝혔고, 권철신·이기환 또한 절대로 신자가 아니라고 온갖 증거를 제시하여 신자일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권철신은 신자로 순교했노라고 천주교 순교자 묘역이라는 천진암 옛터에 묘소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큰 논쟁거리로 남겨두고 권철신이 살았던 옛 마을을 찾아간 이야기를 하렵니다.

며칠 전 다산선생의 묘제(墓祭)를 마친 뒤 실학학회 회장인 안병걸 교수의 안내로 까맣게 잊고 지냈던 권철신의 옛 고향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다산이 기록에 “스스로 지은 호는 녹암(鹿庵)이요 그가 거처하던 곳은 감호(鑑湖)라고 불렀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녹암 대신 ‘감호’라는 호로도 불리었음을 알게 됩니다. 경기도 양평군(그때는 양근군) 양평읍 오빈리 424번지에 위치한 곳입니다. 다산의 마을에서 남한강을 따라 한참 멀리 올라가면 강가에 절벽이 있는데 그 절벽 바위에 ‘감호암(鑑湖岩)’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바위 윗쪽에는 ‘감호정(鑑湖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는 빈터가 허허롭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정자에서 뒤쪽으로는 덕구실 마을로 권철신이 살았던 마을이고 앞쪽은 넘실대는 남한강 물이 흐르고 있으며, 강 건너 큰 산이 앵자봉이고, 앵자봉의 서쪽은 천진암, 동쪽은 주어사여서, 권철신과 그 제자들이 경학을 토론했던 강학회가 열렸던 곳입니다.

강물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그곳이 여주여서, 저는 가끔 감호는 여주 땅이라고도 적은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야, 감호는 양평땅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권철신의 유적지를 확인하려고 노력했던 안교수의 이야기에 의하면, 지금 마을에는 권철신의 유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아, ‘감호암’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곳이 권철신이 살던 곳임을 알 길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권철신, 안동권씨 명문가의 후예입니다. 양촌 권근, 우찬성 권제, 좌의정 권람은 3대 대제학으로 조선 초기 찬란한 명성을 얻은 가문입니다. 그의 후손에 길천군 권반은 병조판서, 그의 후손에 권흠은 이조참판을 지냈으니 권철신의 증조부였습니다. 이런 명문 집안 후손으로 학문이 높아 성호 이익의 학통을 이은 제자였으며, 수많은 제자들이 그 문하에서 학문을 닦은 대학자였지만, 가짜뉴스에 얽혀 억울하게 천주학쟁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었습니다. 다산이 가장 뛰어난 학자라고 수없이 강조한 분이어서 언젠가는 찾아가서 그 유적지를 살펴보리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비록 ‘감호암’이라는 세 글자의 자취뿐인 유적지였지만, 그런 대학자의 유적지를 답사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매우 흐뭇했습니다. 언제쯤 다산의 주장처럼 천주학쟁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다산의 학문을 이끌어 준 대학자 권철신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학자들의 노력을 기다릴 뿐입니다.

 

-글쓴이: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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