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 혁명시대, 교육은 1차산업 틀에 머물러
4차산업 혁명시대, 교육은 1차산업 틀에 머물러
  • 변동빈 기자
  • 승인 2020.03.02 11:25
  • 호수 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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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프로그램과 인재선발 방식 바꿔야

<100년 전 교육 프로그램이 아직도>

우리나라 공교육이 시작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이다. 우리나라가 현대적 교육을 시작한 것은 1905년 전후 일부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보통학교(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세워 사립교육을 한 것부터이다.

하지만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하고 대부분의 초중등 사립학교를 공립으로 강제 전환하여 식민지 교육을 시작하였다. 일제의 교육 목적은 조선인을 일본 왕에게 무조건 충성하게 하는데 있었으며 개인의 진취적 기상이나 창의적 사고, 올바른 역사관 등은 가르치지 않았다. 일제의 조선인 교육 시스템은 영국의 근대화 교육 프로그램에서 공립학교를 답습한 것이다.

영국의 교육제도는 중상류 계급 이상이 다니는 사립학교와 노동자와 농민계급의 자녀가 다니는 공립학교로 나뉘어 있었다. 의무교육제도가 확립된 뒤로도 중등학교의 엘리트 교육은 여전히 남아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기숙형 엘리트 사립학교는 지금도 영국 정치`경제의 핵심을 이루는 집단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다.

정약용 과거답안지
정약용 과거답안지

영국은 1870년 이후 교육법이 제정되어 공립학교가 설립되어 노동자계급의 자녀에게 실용교육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노동자들에게 실용교육을 가르쳐 보다 효율적인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영국이 1차 산업으로 인해 농업이 기계화됨에 따라 농촌의 농노가 도시로 이주해 오면서 농노의 자녀들을 공장에서 노동자로 부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실용교육이 필요했다. 그들의 교육 목적은 지혜롭고, 창의적인 인간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잘 듣는 기계로 만들기 위한 교육이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이 실시한 최초의 공립학교는 바로 영국이 도시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것처럼 일본 국왕에게 충성하는 기계적 인간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해방 후 7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교육제도의 큰 틀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제에 이어 미국의 점령 아래서도 미국은 대한민국이 일제 아래서와 달라지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고위 지도자들은 미국에서 교육받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독재자들은 국민이 비판의식을 갖는 창의적 인간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국민들은 그저 그들에게 순응하는 말 잘 듣는 노비로 있어 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가 되어서도 미국식 교육에 젖은 관료들의 사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우리나라에 공교육 제도를 도입했던 일본이 새 시대에 맞는 교육개혁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창의적 지도자 선발이었다>

 

일제 식민지 교육 이전 조선의 성균관에서 학습한 교육은 양심적인 인간으로 도덕을 함양하고, 창의적이고, 진취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었다. 성균관을 졸업하고 치르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식 논술이었다. 사서삼경을 외우고 역사와 통감을 익혀서 단답형으로 보는 시험이 아니었다.

1611년 광해군은 3월에 실시한 별시에 지금 나라의 기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냐는 제목의 시험을 냈다. 광해군이 즉위한 지 3년 째 되던 해였는데 그 때 36살의 나이에 급제한 임숙영은 임금이 하루라도 자기 역할을 생각하지 않으면 덕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망하게 됩니다. 밖에서는 외척을 빙자해 위세를 떨치고 안에서는 왕비나 후궁의 세력을 끼고 욕심을 채우려 합니다는 답안을 냈다.

JTBC에 방영된 광해군의 과거시험문제
JTBC에 방영된 광해군의 과거시험문제

 

임숙영은 나라의 병폐는 왕 당신에게 있다는 것이었고, 광해군은 임숙영을 급제자 명단에서 삭제할 것을 명했다. 그러면서 광해군은 임숙영의 임금된 자(광해군)가 너무도 괴롭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솔직하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에 삼사(홍문과·사헌부·사간원)에서 임숙영 삭과(과거 합격자에서 삭제한 것)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상소가 빗발쳤고, 영의정 이덕형과 좌의정 이항복 등도 삭과의 부당성을 논변하고 나섰다. 결국 광해군은 두 정승의 청을 받아들여 과인의 명을 접는다고 뜻을 굽혔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616년에 치러진 증광시에서 광해군이 낸 시험문제는 섣달 그믐밤이 되면 서글퍼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논하라는 것이었다.

광해군은 책문에서 가면 반드시 돌아오니 해이고, 밝으면 반드시 어두우니 밤이로다. 그런데 섣달 그믐밤에 꼭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데 대한 그대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정치적인 주제를 내면 직언과 쓴소리를 할까봐 광해군이 꾀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대의 시인이자 문인인 이명한(1595~1645)뜬구름 같은 인생이 어찌 이리도 쉽게 늙는다는 말이냐? 인생이란 부싯돌의 불처럼 짧고 우리네 인생도 끝이 있어 늙으면 젊음이 돌아오지 않는다. 유독 섣달 그믐날 밤을 지세우는 까닭은 지나가는 세월이 안타까워서라며

밤이 새도록 자지 않는 것은 잠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고,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흥에 겨워서가 아닙니다. 묵은 해의 남은 빛이 아쉬워서 아침까지 앉아있는 것이요, 날이 밝아오면 더 늙는 것이 슬퍼서 술에 취해 근심을 잊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런즉 사람이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지 세월이 사람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이건 사서삼경만을 외워서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명한은 스물한 살의 나이에 과거시험에서 이러한 글을 써내려갔다. 그는 당대 한문 사대가의 한사람인 아버지 이정구(1564~1635)와 아들 이일상(1612~1666)과 함께 대제학 3를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국제 바칼로레아와 창의적 교육>

국제 바칼로레아 협약
국제 바칼로레아 협약

 

국제 바칼로레아 언어와 문학평가 문항에 역사는 청산될 수 없지만, 만약 용기를 가지고 마주하게 되면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공부했던 작품 중 최소 두 개의 작품이 어느 정도까지 역사와 대면했는지 서술하시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준의 학생에게 묻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혜정 교육과혁신 소장은 역사 과목을 예로 들면 임진왜란,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시대순에 알맞게 나열한 것은 뭔가라는 게 지금 우리의 시험 문제라면, IB(국제 바칼로레아)전쟁이 끝난 후의 평화합의가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한다는 주장에 대해 서술하라고 나온다누군가 정해놓은 생각,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옳고 그름을 맞추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점에서 IB는 교육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IB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고자 하는 교육자들은 토론ㆍ프로젝트식 수업과 서술ㆍ논술형 평가가 정해진 정답 찾기 교육에서 탈피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데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500년 전 인도에서 붓다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방식과 중국에서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방식은 매우 흡사한 점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하나의 주제를 놓고 묻고 대답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도 인문학 서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이다. 공자의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제자가 묻는 것을 스승인 공자가 대답한 것을 엮은 것이다.

선승들이 공부하는 수단으로 스승에게서 화두를 받는데 화두의 끝은 바로 의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화두가 바로 이 뭣고?”이다. 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선승들의 공부법은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끌어내도록 하는 것이니 국제바칼로레아 교육법은 이미 동양에서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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