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에서 정치가로 전향한 조국
학자에서 정치가로 전향한 조국
  • 변동빈 기자
  • 승인 2019.09.09 12:45
  • 호수 7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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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주은래)1917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과 교토대학에서 청강생으로 공부한다. 하지만 가난한 저우는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1919년 텐진에 있는 난카이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1919년 중국 최초의 학생운동인 5.4운동이 텐진에서 일어났을 때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저우는 그 일로 체포되어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출옥한 뒤 1920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독일, 런던 등에서 3년을 보냈고, 독일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924년 중국으로 돌아온 저우는 장제스(장개석)가 교장으로 있는 황포군관학교 정치부 교사가 되었다. 1926년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공산당원들은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저우만은 장제스의 명령으로 학교에 남게 되었다.

공산당 정권이 세워지고 저우는 마오쩌뚱(모택동) 주석의 총리로서 26년을 함께 하였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겸손하였고, 너그러웠으며 덕을 베풀었다.

그가 총리를 하면서 세운 아홉 가지 다짐이 있는데 이 가운데는 후배가 사적인 일로 총리실을 찾게 하면 안 된다. 손님은 모두 국무원 초대소에서 공식적으로 만난다. 식당에서는 다른 사람과 같이 줄을 서야 한다. 생활을 검소하게 하라. 어떤 일에도 총리직을 이용하면 안 된다. 공사를 구분하고 특권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그는 이런 다짐을 실천하였고, 그의 말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졌다.

방광암을 앓던 그는 197618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자식도 없었고 사망 할 때 그가 남긴 유일한 유산은 5000위안(한국돈 85만원)이 전부였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이 죽은 뒤에 시신을 화장하여 유해를 논에 뿌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화장한 재가 농사짓는데 거름이 되게 하려는 이유였다. 중국인들은 저우언라이를 논어에 나오는 군자에 비유하곤 한다. 군자의 정치를 한 사람이며 군자로서 떳떳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혁명가요 정치인이며 초대대통령을 지낸 호치민은 본명이 응웬 닷 탕으로 베트남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발전된 서구의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의 증기선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에 건너간 그는 프랑스에서 식민지 해방운동을 하게 된다. 프랑스 식민지 연맹을 결성하고 기관지 르 파리아를 편집`발행하는 일을 하게 된다.

꾸준한 식민지해방운동을 주도한 그는 19412월 베트남에 잠입하여 베트남 해방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때부터 본명을 버리고 호치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는 일생을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독신으로 살았으며, 196992일 주석(대통령) 재임 중 심장병으로 급사하였다. 그는 평소 측근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장례를 위해 인민의 돈을 쓰지 말고, 시신을 화장하여 베트남 남부, 중부, 북부에 뿌릴 것, 통일이 된 뒤 남부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 것 등을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한 뒤 야당이 이를 거세게 반발하며 청문회조차 열리지 못했으며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다. 일부에선 그를 강남좌파라고 부르며 금수저를 물고 좌파의 옷을 입었다며 비아냥거렸다.

모든 정치인들에게 저우언라이와 같은 군자정치를 기대하고, 호치민과 같은 독립투사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공자에게 자공(단목사)이라는 부유한 제자가 없었으면 그의 사상은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자는 보수여야 하고, 진보는 가난해야 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진보적인 부자가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였다고 그를 책망만 할 것이 아니라 그나마 공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것을 칭찬하고 다독거릴 여유마저 없는 것일까?

진보적인 학자에서 정치가로 전향한 저우언라이처럼 정치인이 된 조국교수가 저우의 군자와 같은 품성으로 자신을 다시 단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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