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리 부부의 노래'
'비오리 부부의 노래'
  • 장유이 기자
  • 승인 2019.05.21 13:02
  • 호수 7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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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정춘자 부부를 만나다

아승지겁 인연으로 이 세상 부부 되면

부창부수 화합하여 손 꼭 잡고 걸어야지

제여곰 딴 길 찾고서야 부부탑을 쌓을 건가

 

이인성·정춘자 부부가 펴낸 시조집에서 비오리의 노래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오는 22일 부부의 날이다. 불교의 법망경에 이르기를 부부의 인연은 칠천 겁 인연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천생연분이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 겁이란 일천 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집채만 한 바위를 뚫는 시간을 말한다.

지난 14일 비오리 부부라 불리며 북이면 사거리 한약방을 운영하는 이인성·정춘자 부부를 만났다. 노부부는 <비오리의 노래><비오리의 합창>이라는 부부 시집을 펴낸 작가이고, 이인성 원장은 노령유학회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 비오리 부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부부의 비오리 시집

) 저희가 펴낸 시집 <비오리의 노래> <비오리의 합창>이라는 제목은 정소파 선생이 지어준 것입니다. 원앙은 짝을 지은 후 한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는 혼자 살다가 죽다고 해서 금슬 좋은 부부의 상징이 되고는 하는데 비오리는 짝을 지은후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도 따라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오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비오리 부부

) 저희 부부는 각자 사별의 아픔을 겪은 후 만났습니다. 먼저 세상을 뜬 처는 부모와 형제들과 조카들까지 살뜰히 챙기며 가정을 정말 화목하게 잘 이끌어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30여 년 전 사별을 하게 되었고 후에 아이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처를 만났습니다. 종로에서 부녀회장과 테니스회장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사람인데 저 같은 사람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어머니를 아주 좋아하고 저보다 엄마를 더 좋아할 정도입니다. 죽은 처도 고맙고 지금의 처도 너무 고마워서 문학관 옆에 이 두 처를 생각하며 화영루(和影樓)’라는 누각을 지으려고 합니다. 화목함을 중요시했던 전처를 생각하여 화()라는 글과 현재 처의 호인 목영당의 그림자 영()자를 써서 <화영루>라고 지었습니다.

) 아이들이 아주 착하고 바릅니다. 저에게도 아주 지극정성으로 잘하고요. 제가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물론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과 배려도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비오리 문학관

) 북이면에 우리 부부가 비오리 문학관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어서 짓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동안 제가 미술과 문학 활동을 하면서 받은 상들과 남편이 허준 의학상 등 한약방을 운영하며 받은 상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일 뿐, 그저 사람들이 많이 오가며 부담 없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것입니다.

 

-부부의 예술활동

) 어릴 적에 몸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손에 힘이 나게 하려고 학교 방학 때 면 꼭 서예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후 서울에 살 때 지루하기에 다시 서예를 시작했고 장성으로 온 후에 시를 배워 서울 세종문학을 통해 등단을 했습니다. 제가 승부욕이 강해서 뭔가 하나를 시작하면 반드시 앞서 나가야만 합니다. 안되면 밤을 새우고서라도 하는 오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까지 됐습니다. 정말 안 간 곳 없이 모두 다니며 심사위원 활동도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했는데 뇌경색으로 두 번을 쓰러진 후 그 후유증으로 작품 활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서울에서 심사위원을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는데 못 갔습니다. 남편이 계속 한약을 지어주면서 간호를 많이 해줘서 아주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작품활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저의 남편은 시조를 쓰고 장성 문학집에 50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쓰기도 했습니다.

 

-장성문인협회 설립멤버와 협회장 부부

) 남편은 장성문인협회 설립멤버입니다. 장성에 문학지가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지인들과 설립하게 되었는데 5명이던 수가 지금은 100여명이 넘습니다. 제가 처음 장성 문화원에 들어갔을 때 여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하면할수록 흥미롭더군요. 그래서 꾸준히 공부하고 활동한 덕분에 문화원 부원장을 하게 되었고 예총회장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문인협회가 초코파이로 식사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의 문예지도 발간해야하는데 안되겠다 싶어서 예총회장이 된 후에 각 학교의 교장들을 만나고 다른 지역의 향우들을 만나 지역예술 협회의 현실을 알리고 지원금을 받아 출판에 힘을 보태는 등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앞으로도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예술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노령유학회

) 노령유학회는 1989년에 시작해서 올해 30년을 맞이합니다. 사실 저는 김제 출신입니다. 하지만 1969년에 장성으로 와서 50년이 넘게 이곳에서 살았으니 이곳이 고향이나 마찬가지죠. 그 당시에는 한약방이 없는 곳에 한약방을 개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업할 곳을 알아보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향처럼 정붙이고 살면서 지역에 효자·효부 등 착한사람들이 많으니 그 분들을 위해 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생각에 주변사람들도 찬성하였고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북이면을 대상으로 하여 북이유학회라고 이름 하였다가 현재는 노령산의 이름을 따서 노령유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장성지역 전부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유학회가 굉장히 활성화 되었는데 지금은 점점 사람들 수가 줄어들어서 안타깝습니다. 다음 세대가 잘 이어받아주기를 바랄뿐입니다.

 

부부의 연을 맺고도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서로를 원망한다. 때로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어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노부부는 서로에게 자신과 부부의 연을 맺어주어 항상 고맙다며 자신의 정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이 노부부의 사랑의 표현은 젊은 부부들이 본받아야 할 또 다른 어른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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