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뭔가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뭔가요?”
  • 장유이 기자
  • 승인 2019.05.08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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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주지 토진스님에게 묻다

<부처님 오신 날 특집>

토진 스님
토진 스님

 

설일체유부 경전에 보면 당시 마갈타국의 아사세 왕이 부처님께 법문을 청해 들을 때 동참한 모든 제자들이 기름 등불을 켜서 법회자리를 밝혔다. 이 때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기름등불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서 기름 한 되를 구해 불을 밝혔다고 한다. 새벽이 다가오자 모든 등불이 다 꺼졌지만 난타의 불은 꺼지지 않고 밝게 타고 있었고, 이를 본 부처는 "이 등불은 지극한 성심과 큰 원력을 가진 사람이 밝힌 등불이기 때문에 꺼지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하고 훗날 이 여인이 성불(成佛)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부터 부처님 전에 지극 성신으로 기원, 봉양하면 공덕을 입는다는 것을 깨닫고 등불을 밝히게 되었고 이것이 부처님 오신 날의 연등행사의 유래가 되었다.

 

음력 48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로 주석하고 계시는 토진스님을 만나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와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님은 종교란 모든 인간의 바람은 행복한 삶인데,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은 집착과 번뇌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광명을 얻어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였다.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해 잠시 설명 부탁드립니다.

불교에는 석가탄신일(음력 48), 석가출가일(음력 28), 열반일(음력 215), 성도일(음력 128) 이렇게 4대 명절이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그 중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석가>는 성()을 뜻하고, <모니>는 부처님의 능력에 따라 10가지의 이름이 있는데 그 중 깨달음을 얻었을 때 붙이는 이름입니다.

석가모니는 네팔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불경에서 석가모니께서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는 옆구리정도의 신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힌두교 4성 계급 중 머리는 브라만, 옆구리는 왕족, 배는 평민, 발바닥은 천민을 이야기 하는데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왕족출신임을 표현한 말입니다.

 

-당시 인도의 시대상황은 어떠했습니까?

B·C 5세기는 세계사적으로 많은 도시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입니다. 인도도 부족이 통합되어 도시국가가 형성되던 시기로 침략전쟁도 많고 혼란과 과도기가 극에 달했던 시대입니다. 도시국가가 형성되기 전에는 모두 부족중심이라서 국가라는 체제를 이야기할만한 것이 없었고 종교라는 것도 체계가 잡히지 않아 샤머니즘 토테미즘 형태의 신앙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인도에는 힌두교가 많이 퍼져있었습니다. 힌두교는 사람의 계급을 4가지로 나누고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신분이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로 계급이 나뉘어져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신분을 나누고 신에게 종속된 삶을 말하던 시기에 이를 극복한 시발점이 된 것이 석가모니였습니다. 석가모니는 사람의 계급은 중요하지 않고 누구나 수행만 하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탄생게송(誕生偈頌)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늘 위나 하늘 아래(天上天下)에나, 내가 제일 높다(唯我獨尊)는 말입니다. 이는 사람이 출생계급이나 신분 또는 신에 의해 종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업보(카르마karma)에 의해 결정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카르마란 업, 곧 내가 지은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의 가치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부처는 자신이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그 깨달음의 행동을 할 때, 곧 자기가 부처임을 자각하고 행동으로 보여야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수행의 완성이란 무엇일까요?

번뇌가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요. 번뇌란 모든 갈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번뇌는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의 탓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지만 한줄기 빛이 이를 밝게 하듯 마음의 무명은 지혜의 힘으로 번뇌를 버리고 무지와 무명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광명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광명의 세계는 번뇌가 없으니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이며 그 광명의 세계에 가기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님도 번뇌가 있으십니까?

번뇌가 없다면 아마 저를 부처님이라고 부르겠지요. 하지만 아직 스님이라고 부르는 것 보면 아직 번뇌가 있는 것이겠지요? 스님들도 세속의 욕망을 끊고 이곳에 들어왔지만 아직은 번뇌가 있는 수행자일 뿐입니다. 오히려 번뇌가 더 많지요. 세속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번뇌만 있지만 수행자는 남을 구제해야 하는 번뇌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수행자란 번뇌를 없애가는 과정을 함께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것이 불교다라고 할 수 있는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깨달음의 종교라고 이야기 합니다. 마루 종() 가르칠 교() 곧 근본에 대한 가르침을 이야기 하지요. 모든 종교의 목적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 합니다. 불교는 그 고통의 원인을 집착으로 보았습니다. 집착을 벗어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이 탐냄(), 성냄(), 어리석음()이고 이를 벗어나게 하는 과정이 자비와 보시의 실천이며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는 것이고, 불교의 수행입니다.

 

-백양사는 고불총림(古佛叢林)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슨 뜻이고 고불총림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1947년 당시에는 시대적으로 해방 직후였기에 식민지불교, 곧 왜색불교의 한계에 부딪히던 시절이었습니다. 만암스님은 이를 극복하고자 불교정화의 뜻을 세우고 제주도와 전라도 대상으로 교육 중심의 결사체를 만드셨는데 그 결사체의 이름이 고불총림입니다 고불(古佛)이란 옛날부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곧 불교가 시대에 따라 변하지 말고 근본가치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고, 수행은 교육을 통해서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불총림의 기품을 닮았다 하여 백양사 대웅전 마당에 있는 매화나무의 이름이 고불매로 불리게 되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108일 천연기념물 제4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출가한 수행자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요? 예를 들면 옛 선비들은 정성과 공경을 삶의 덕목으로 삼았고 사제(가톨릭)들은 순종과 청렴을 덕목으로 삼는다고 들었습니다.

 

수행자는 화합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同事攝)을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여깁니다. 불교는 화합을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삼아 나와 내 이웃, 나와 내 나라, 나와 온 인류, 더 나아가 전체 우주가 이해와 사랑으로 화합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바람직한 행동을 끊임없이 보시하며 베풀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혼자만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이룬다는 것이지요.

 

-장성을 위해 백양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성(長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창부터 순창까지 긴 성을 쌓고 지키는 군사도시였습니다. 그 중심에 백양사가 있었습니다. 노령산맥 아래의 전라남도 곡창지대가 점령을 당하지 않도록 백양사가 스님들을 징집해서 성을 쌓고 지켰습니다. 장성은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었고 교통도 편리하고 문화재 자원도 많고 유교와 불교의 강한 전통을 바탕으로 훌륭한 인재들도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조건의 장성이 주변부 도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장성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이고 가치 있는 것들을 군민들과 함께 발굴하고 다시 크게 부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백양사의 역할이고 우리 스님들이 해야 하는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들마저도 자본주의의 물신주의에 물들어버렸다는 비판이 없지 않습니다.

출가란 어떤 것입니까?

현대 사회가 자본주의이므로 스님도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핸드폰도 돈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본주의화 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주의라는 것에 좋다 나쁘다가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문제인 것이죠. 불교가 자본주의화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자본을 어떻게 획득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 이것이 불교적이냐 아니냐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번뇌를 늘리는 쪽이 아닌 없애는 쪽으로 써야합니다. 돈이라는 것은 자기가 관리하는 것뿐이지 온전히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그 관리를 불교적으로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양사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연등을 달았다.
백양사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연등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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