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물뫼로 시집온 ‘소라엄마’ 정인숙씨
여수에서 물뫼로 시집온 ‘소라엄마’ 정인숙씨
  • 이미선 기자
  • 승인 2019.04.29 13:56
  • 호수 7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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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소 속, 절절했던 삶 속으로..

장산3리 마을회관.

비가 와서 삭신이 쑤신 듯 온 몸을 주무르며 마룻바닥에서 누워 있는 노인 6,

적막함 속 우중충한 날씨에 반팔을 입고 해맑게 웃으며 빌린 돈 갚으로 왔어요~”라며 들어오는 정인숙(62), 다들 그를 소라엄마라 불렀다.

 

지금은 정인숙이란 이름보다

정인숙씨는 여수에서 태어나 남편과 3년 동안 펜팔을 주고받다 1979년 장성으로 시집와 4명의 딸을 낳았다. 큰딸 이름이 소라, “저의 이름 정인숙보다 소라엄마가 더 익숙해요

소라엄마는 여태껏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니 공을 어찌 갚을꼬..

결혼을 하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어요. 시어머니가 아파서 병수발을 들었는데 저는 며느리로써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친정 부모님처럼 모셨어요.

그런 시어머니는 저에게 미안한지 연신 내가 너의 공을 어찌 다 갚을꼬라는 말을 항상 하셨어요. 저는 그런 어머니께 거둘 자식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거에요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몇 년을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셨는데 그 후 우리 막내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저는 그 당시 형편이 좋지 않아 면사무소에 일을 다녔는데 막내딸이 24톤 트럭에 치여 사고가 난거에요. 가서보니 딸이 많이 다쳤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고도 사고를 낸 기사 멱살을 잡을 생각 보다 우리 딸 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요.

수술을 하고 일주일이 지나 말을 하지 못하던 딸은 뭔가를 찾는 듯 하길래 원하는 걸 찾아 손에 쥐어 주니 딸은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뭔가를 적더라구요. 딸이 쓴 메모에는 엄마 할머니가 나 살렸어몸 상태가 좋아진 후 딸에게 왜 할머니가 살렸다고 했느냐라고 묻자 딸이 말하기를 얼굴은 잘 안보였는데 하얀 버선을 신은 사람이 앞에 서서 내가 너를 살리는 길이 너희 엄마에게 공을 갚는 일이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들으니 막내딸이 3살 때부터 시어머니가 저한테 니 공을 어찌 갚을꼬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이 기억나더래요. 그 때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까지 머리끝이 쭈뼛 서요.

 

그 당시 겨울은...

겨울,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온천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저는 돈도 없고 딸들이 어려서 함께 가지 못했어요.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뒷산에 올라가는데 마을에 사는 남면양반이 나무를 짊어지고 내려오고 있었죠. 저는 산으로 올라가고 남면양반은 내려가고 있었는데 자꾸 뒤를 돌아 저를 쳐다 보더라구요. 당시 남면양반은 저놈의 여편내가 뒷산에 목매다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걱정 되 뒤돌아 봤던 거였어요.

주변에 앉아있던 노인들은 그런 사연이 있었는가.. 말을 안하니 몰랏네. 항상 밝게 웃는 소라엄마 모습만 봐서 이런 힘든 일을 겪고 살았는지 몰랐어.. 맘고생이 진짜 심했겠네라며 등을 쓰다듬었다.

 

나이가 들면 겪는 이별, 이별에 대한 슬픔은 항상 힘든 것

저희 마을에 과천할아버지라고 부르던 노인이 있었어요. 그 노인은 제가 출근을 하면 올 때까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딸을 걱정하듯 항상 그러셨죠.

저녁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부모님 품을 찾듯 과천할아버지 집을 자주 찾아갔는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왔어?“라며 항상 반겨주셨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란히 누워 있으면 제 나이를 잊은 듯 그사이를 비집고 쏙 들어가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있었던 일,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을 마치 갓난아이가 투정을 부리듯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도란도란 이야기 했었는데 지금은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네요. 104세 연세에 돌아가신 과천할아버지가 지금은 하늘에서 제가 잘하고 살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요.

 

 

우리 소라엄마 칭찬 쪼깐 해도 되겠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찰나 노인(남평댁)이 한마디 해도 되냐며 돌아 세웠다.

우리 소라엄마는 참말로 누구든지 사람차별 없이 대해줘서 내가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디 이렇게 말할 기회가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소라엄마는 밤낮없이 일을 하는데 일끝나믄 날마다 마을회관을 들려서 우리 노인들을 살펴보고 가. 그것이 정성이 없으면 참말로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여

남평댁은 소라엄마는 죽어서도 꽃밭에 앉을 사람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람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현재 소라엄마는 황룡의용소방대 여 대장 5, 부녀회장을 20여 년째 도맡아 하고 있다.

또한 요양보호사로는 10년 째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하며 노인들을 친부모님처럼 모시고 노인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앞으로의 바람은 우리 소라아빠와 딸들이 모두 건강하고,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웃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껏 꿋꿋이 소라엄마로써 고난과 역경을 버텨왔기에 이렇게 웃으면서 옛 생각을 하며 넋두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소라엄마가 다른 건 다 잃어도 잃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웃음이다. 그의 앞으로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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