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장학회 '공양진 이사장'을 만나다.
양정장학회 '공양진 이사장'을 만나다.
  • 장유이 기자
  • 승인 2019.04.09 17:45
  • 호수 7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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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어 장학금 5억 출연

공양진 이사장은 지난 2003년 자신의 돈 1억원을 출연하여 양정장학회를 설립하고 2007년에 1억원을 더 출연하여 법인 재단으로 등록하였다. 그는 재단 설립 후 16년간 총 5억원의 돈을 출연하여 해마다 관내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웃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돈을 내놓는 그는 요즘말로 하자면 이른바 금수저라도 되는것일까?

 

그의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일 진원면에 있는 그의 묘목 농장에 찾아가 양정장학회 공양진(80) 이사장을 만났다.

 

소년시절

5형제 중 막둥이인 소년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때 6.25사변이 터졌다.

당장의 끼니가 걱정이었기에 중학교 진학은 할 수 없었다. 먹고 살기위해서 15살 소년은 초등학교 졸업 후 곧장 돈을 벌어야 했고, 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막노동밖에 없었다. 소년은 고향을 떠나 2개월이고 3개월이고 도시의 막노동판을 찾아다니며 돈을 벌었다. 그렇게 기약없이 다른 고장을 떠돌며 돈을 벌던 시기였기에, 18살에 지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된 날들에 너무도 지쳤던 소년은 17살 무렵 속세에서의 삶을 끊고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며 여생을 마치고자 백양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백양사의 주지스님은 소년을 허락하지 않았다.

젊은 것이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너가 목표를 가지고 10년만 해봐라.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다. 사회에 나가서 10년에 한 번씩 마음을 다시 먹고 무슨 일이든 해봐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은 없다

소년은 다시 사회로 나와 밤잠 안자며 일했다. 나쁜 일 빼고는 안 해본 일 없이 한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텨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 다른 형제들까지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청년시절

시간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결혼을 하여 13녀의 아버지가 되었다.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다 싶을 때 쯤 청년은 자신의 어려웠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이제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광주에 살던 그는 구정 때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옷과 양말, 고기와 과일 등을 사서 자신의 고향 장성의 귀계원(현 상록원)을 찾아 그곳 아이들과 함께 명절을 보냈다.

그리고 정월초사흘에는 영락양로원에 떡국을 쑤어서 그 곳 어른들에게 대접하였다.

또 추석명절이면 고향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을 한가마니씩 돌리곤 했다.

1973년부터 시작된 그 일은 1983년 농협조합장이 되기 전까지 10년을 이어왔으나 조합장이 되고부터는 선거법 때문에 봉사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였기에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조합장 임기를 마친 후에는 현재까지도 일 년에 한 날을 정하여 매년 70~80여명의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중년시절

1983년 남면농협의 조합장이 된 그는 조합장으로 재직중일때도 업무능력과 함께 봉사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남면농협에 장학금제도를 만들어 지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그가 만든 장학금제도는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으며 다른 농협에는 없는 남면농협만의 자랑이다.

장학금 제도를 만든 그는 농협과 별개로 자신의 개인돈을 장학금에 보태어 내놓기도 했다.

또한 겨울에는 노인들을 위하여 노인정에는 석유 한 드럼씩을 보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노인정은 난방비 걱정을 덜고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년...

노년에 접어든 공양진 이사장은 자신의 재산 1억원을 꺼내어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그가 장학재단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번에 아들 딸 사위 며느리까지 모두 불러, 최근에 땅을 팔아 마련한 돈 2억원을 장학재단에 추가로 출연하고, 앞으로 5억원을 더 출연하여 총 10억원을 장학금을 채우는 것이 자신의 포부라고 말했을 때도 가족들은

아버지께서 노력해서 모은 것이니 아버지게서 내키시는대로 사용하시라며 그를 응원했다.

 

바보짓? 가장 행복한 일.

공 이사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새벽4시반에 일어나 저녁8~9시까지 일을 한다.

그렇게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장학금으로 내놓는다.

그런 그에게 바보짓, 미친짓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뭣하러 이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지난 16년간 많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나 그에게 고맙다며 찾아오거나 전화라도 한통 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는 감사인사를 받고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에게는 자부심이 있다. 자신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도 이렇게 하지 못하는데 자신은 피땀 흘려서 모은 돈으로 이렇게 좋은 일에 값어치 있게 쓴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할 뿐이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주어진 장학금이 학생들의 학업에 보탬이 되고, 학생들은 학업에 열중하여 바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공양진 이사장은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훌륭한 사람의 의미를 묻자 국민이 보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온 국민은 아니더라도, 군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니 이미 훌륭한 사람이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는 많이 가진 사람들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돈인데 뭐가 훌륭하냐며 손사레를 쳤다.

그런 그를 보며 진정 많이 가진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본다.

몇 백억을 손에 쥐고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날까 전전긍긍하는 자와, 몇 푼을 손에 쥐고도 어려운 이웃이 없는지 돌아보며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자.

진정 많이 가진 자는 후자가 아닐까?

 

지나온 그의 삶에 대중가요의 한 구절을 선사한다.

브라보! 그대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그대의 용기를 위해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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