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의 부끄러운 자화상
지역신문의 부끄러운 자화상
  • 변동빈 기자
  • 승인 2019.03.11 2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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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지역 주간신문이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언론자유화 조치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주간신문은 정치 기사를 제외한 해당 지역의 각종 소식을 게재하여 보급함으로써 지역민의 생활 편익에 도움을 주는 신문으로 역할이 제한되었다.

1998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고 법인으로 등록된 신문은 일반주간신문으로서 시사와 정치 분야의 기사를 게재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1995년부터 시작한 지방자치제도에 맞물려 전국적으로 기초자치단체마다 지역주간신문이 발행되었고, 현재 전국에 500개 이상의 지역신문이 발행되고 있다.

지역신문이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1820년대에 25개의 일간지와 400 종이 넘는 주간지가 발행되고 있었는데 일간지의 경우도 대부분 지역신문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 L.A타임즈도 모두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 일간신문이다.

미국의 신문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끼리 소식을 주고받기 위해 적게는 수백부에서 많게는 수천부에 이르는 신문을 발행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며 성장해왔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전국적으로 수많은 지역신문이 창간되었고, 이들이 선출직인 시장`군수와 지방의회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지역신문 종사자들의 능력은 부족했고, 경영은 어려웠으며 그에 따른 창간과 폐간이 계속되었다. 장성군의 경우에도 2000년 이후 5~6개의 신문사가 창간되었다가 폐간하였으며 대부분 창간 후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지역신문의 경영난은 종사자들의 높은 이직률에서도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으며 경력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자들이 생산한 기사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신문이 사실을 해석이나 주장이 없이 보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길 때가 있었다. 이는 신문이 특정한 정파나 종교집단에 의해 발행되면서 사실과는 동 떨어지는 기사를 보도하는 경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방송은 뉴스를 생산하고 독자나 시청자는 이를 소비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라고 할 만큼 뉴스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뚜렷하게 구별되기 어려운 시대다. 더구나 종이신문보다 훨씬 빠르고 생생한 유투브나. 카카오티비 등 개인 동영상 뉴스가 실시간으로 보도되어 신문의 뉴스 기능은 크게 약화되었다.

따라서 많은 지역신문들이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기능에서 벗어나 뉴스를 분석하고 의견을 주장하며 지역의 과제를 설정하고 토론하는 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한 사실을 보도하는 기능에서 뉴스를 분석하고 논평하는 역할을 할 때에는 저널리스트에 대한 보다 높고 깊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몇 년 전 우리지역의 모 지역신문 발행인이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다시는 언론에 종사하지 않고, 본업에 충실하겠으니 선처해달라고 말했고,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지역신문의 사주로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윤 후보 측이 자신의 캠프 선거운동원을 매수해 제보자로 내세워 폭로시키는 비열하고 창피한 일을 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낸 A씨가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 지역신문의 편집국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도덕적인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도덕의 잣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 발행과 관련되었거나 그와 유사한 일로 집행유예기간에 있는 사람이 신문사의 발행인이 되고, 편집국장이 된다면 그 신문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신문의 신뢰가 떨어지거나 말거나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지역신문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저널리스트에 대한 평가도 함께 추락한다는 사실이다. 지역신문에 종사하는 한사람으로 비참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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