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공시생들
90년생 공시생들
  • 변동빈 기자
  • 승인 2019.03.05 13:38
  • 호수 7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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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 228368명이 지원하여, 6천여 명이 합격하고 22만 여명은 낙방하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공시생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현재 재수는 기본이고 삼수 사수생이 넘쳐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는 3년에 한 번 씩 치를 때마다 33명을 뽑는데 보통 6만여 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지금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과거시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양반의 자제는 5세가 되면 서당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숙명이고 일생일대의 과제였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의 평균 나이는 35세로 40대와 50대의 급제자도 전체의 15%를 차지했다.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평균 30년 이상 공부를 했다는 말이다. 당시의 평균 수명이 60세도 안 되던 세상인 것을 감안하면 참 많은 나이에 급제를 한 것이다.

가장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고종 3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이건창이고, 선조 때 박호이는 17세의 나이로 장원급제하였다. 전북 순창 사람인 박문규는 1887년 고종 때 83세의 나이로 급제하였는데 어명으로 정3품에 해당하는 병조참지에 임명되었다.

과거시험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율곡 이이로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9번이나 여러 시험에서 장원을 하였지만 대과에 급제한 것은 29세였다. 한편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도 3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스무 살 무렵인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나아간 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더구나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은 3년에 한 번씩 치러졌으니 지금의 공무원 시험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지역 출신을 보면 서울이 65%, 평안도 17%, 경상도 6%, 경기도 6%, 전라도와 강원도 등이 7%였다. 지역적인 편중이 몹시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사시에 합격한 뒤 대과에 급제하기 위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는 것 외에도 서울 근교의 사찰이나 서원에서 과거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합숙하는 것을 거접(居接)이라고 하였는데 요즘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노량진 공무원 고시학원의 원류가 아닌가 싶다.

이제(頤齋) 황윤석의 일기에는 그가 아내의 출산을 위해 처가가 있는 남원에 갔는데 남원의 보현사와 영천서원에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요즘으로 말하면 그룹스터디인 거접을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황윤석도 보현사에 들어가 과거공부를 하였으니 지방에서도 과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매진하였는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과거는 요즘의 고시와 비교하면 생원, 진사과나 별시를 7급이나 9급 시험에 비교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 지방관리는 생원, 진사과에 합격하여도 등용하였기 때문이다.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집안 뿐 아니라 고을에 영예였으니 권상일의 일기에 의하면 집에 돌아오니 축하를 위해 찾아온 손님으로 마당에 있는 큰 나무가 부러졌다고 하였다.

또한 고을에 있는 서원을 찾아가 알현하는 것은 물론 조상의 묘소를 찾아 잔을 올리고 외가의 산소와 처가의 조상을 찾아 잔을 올리고 나니 두 달이 걸렸다고 하였다. 이렇게 과거에 급제하여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잔을 올리는 것을 영분제(榮墳祭)라고 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급제할 정도의 영예는 아니지만 요즘 자녀들이 교사 임용고시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잔치를 할 정도로 경사스럽게 여긴다. 요즘 젊은이들이 구조조정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 안정된 직업을 추구하는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현상이다.

하지만 연간 20만 명에서 30만 명에 이르는 공시생 양산은 심각한 사회적 낭비가 아닐 수 없으며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17조원이 넘는다고 분석하였다.

30년 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결정하였지만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의 진로를 정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공시생의 양산이 요즘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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