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을 무너뜨리고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을 무너뜨리고
  • 변동빈 기자
  • 승인 2019.01.29 00:16
  • 호수 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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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대법원장이 대법원 수장으로는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되었다. 사법행정권 남용이 가장 큰 이유이며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헌법재판소의 기밀 유출, 법원 공보관실 비자금 조성 의혹 등 범죄 사실만 40여개에 달한다.

정부 수립 이래 70년 동안 14명의 대법원장이 탄생했고, 이 가운데 사법부는 물론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은 단연코 가인 김병로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가인은 18세에 면암 최익현의 영향을 받아 의병부대에 가입하였고, 송사 기우만과 의병투쟁을 결의하였다. 면암의 의병부대가 해산되자 유학길에 올라 변호사가 되었고, 독립운동가의 무료변론, 소작쟁의 사건, 노동자들에 대한 변론을 거의 도맡아 하였다.

`우익으로 갈라져 있던 독립운동단체가 신간회로 합해지면서 1930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하여 93개월 동안 재임하며 사법부 독립의 기초를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승만은 걸핏하면 사법부에 압력을 가했고 가인의 사퇴를 종용하였다. 가인이 한국 전쟁 때 다쳤던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대수술을 받고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이승만은 또 다시 그에게 사퇴할 것을 종용했지만 그는 의족과 지팡이를 짚고 법원에 나타났다. 가인에게 사법부의 독립은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절명의 과제였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 때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는 102개월이라는 최장수 대법원장 재임 기록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민병석은 한일합방조약에 협력해 자작 작위를 받았고, 형 민홍기도 이를 물려받는 등 대표적인 친일 가문으로 꼽힌다.

민복기는 사법살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인혁당사건의 재판장을 맡아 도예종 등 8명에게 사형을 확정했고, 국제법학회와 국제엠네스티는 그들의 사형이 집행된 197549일을 사법암흑의 날로 선포하였다.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불과 18시간 만에 도예종 등 8명의 사형을 집행한 것도 전무후무한 일이며 30년 뒤 법원은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법에 의한 통치를 체계화한 한비자는 "법이란 먼저 관부에서 공포하여, 지키면 상을 받고 명령을 어기면 처벌받아 상과 벌이 분명하게 시행된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마음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기대며 호소할 곳이 바로 법이기 때문이다.

민복기씨가 박정희의 하수인이 되어 사법살인을 자행하고 최장수 대법원장이 된 것은 명예일까? 수치일까? 이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와 짬짜미가 되어 사법농단을 자행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묻고 싶다. 그대의 삶은 명예로운가? 수치스러운가? 잘 모르겠다면 민복기씨를 살펴보라.

10·2612.12 그리고 5·18 광주항쟁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격동기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취임 2년 만에 전두환씨에게 쫓겨난 이영섭 대법원장은 퇴임식에서 기가 막힌 표현을 하였다. 그는 "취임 초에는 포부와 이상이 컸으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며 사법부를 독립적인 관청을 뜻하는 '()' 자를 써서 사법부(司法府)라 하지 않고, 행정부의 부처처럼 보이는 '()'를 써서 사법부(司法部)고 지칭하여 사법부가 독립되지 못한 것을 꼬집었다. 이영섭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은 지키지 못했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버리지 않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사법농단이 국민에게 주는 허탈과 분노가 국정농단에 버금가는 것은 국민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을 무너뜨려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승태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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