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마을 은행나무 벌목 제거’ 하기로
‘성산마을 은행나무 벌목 제거’ 하기로
  • 이미선 기자
  • 승인 2019.01.29 00: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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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함께 베어버린 최악의 선택

장성군이 장성읍 성산마을 가로수 길의 은행나무를 제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장성군은 장성읍 성산마을의 은행나무 130여 그루를 제거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성산 은행나무 공론화 군민참여단’(이하 군민참여단)이 은행나무를 벌목하자고 권고함에 따라 이 같은 의견을 존중해 성산마을 은행나무 가로수를 베어내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장성군은 기관장, 사회단체장, 기자, 이장대표, 성산 주민 등 29명이 참여한

 

군민참여단을 구성했다. 보다 많은 의견을 물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정책 결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하지만 공론화 군민참여단의 구성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부터 수긍하기 어렵다. 성산의 역사와 미래 디자인을 논의할 수 있는 전문가와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한 인사들은 하나도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성군은 성산마을 은행나무 길은 도로 양쪽을 따라 늘어선 아름드리 은행나무 130여 그루가 가을이면 도로를 화사한 황금빛으로 물들이지만, 수령이 50년이나 되는 까닭에 길게 자란 뿌리가 보도블록은 물론 인근 상가 건물과 담장에까지 균열을 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은행나무로 인한 주민 민원이 잇따르자 장성군은 지난해 7월과 9월 두 차례 은행나무 가로수길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주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은행나무들을 베어 없앨지 그대로 둘지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 867명 중 72%가 제거하자고 답했다. 은행나무를 그대로 보존하자는 의견은 26%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설문에 응한 이들이 과연 성산의 역사와 은행나무의 가치를 알고 올바른 선택을 했을까? 공론화 군민참여단에 참석한 인사들마저도 마찬가지다.

 

<성산에는 왜 하필 은행나무를 심었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7~1598)을 겪고 장성의 인구는 현저하게 줄었으며 그 피폐가 적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1600년 장성현과 진원현을 합해 장성현으로 정하고 관헌을 제봉산 아래에 두었다.

그 후 1655(효종5) 입암산성을 정비하였고, 장성현을 도호부로 승격하고 관아를 성산(현재 성산초등학교)에 두었다. 이와 함께 용강리에 있던 단암역(현재 장성호 제방 부근)에 나주 청암도찰방을 옮겨와 청암역으로 명명했다. 청암역은 전남에 두 개밖에 없는 매우 크고 중요한 역으로 청암역이 있던 곳은 장성의 15개 읍면 가운데 하나인 역면이 있을 정도로 컸던 곳이다. 청암역을 관장하는 찰방은 현감과 같은 종6품이었지만 중앙정부와의 정보와 교류를 담당했기 때문에 현감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성산은 1921년 군청이 영천리로 옮기고 1943년 장성읍이 읍으로 승격하며 읍사무소가 영천리로 옮기기 전까지 350년 이상 장성현의 관아가 있던 매우 역사적인 곳이다. 향교가 성산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것도 조선 중기에서 조선이 망할 때까지 성산이 장성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서이다.

은행나무는 유학의 전래와 관계가 깊으며 문묘와 향교 그리고 서원에 심어져 있어 유학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성균관 등 유교관계 학교 및 단체의 상징으로 은행잎을 도안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산의 중심 도로변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은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잇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 심은 은행나무와는 그 배경과 역사적 가치가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성산의 가치와 미래>

성산은 천변에 수백 살이 넘은 오랜 노거수가 10여 그루 이상 있고, 곳곳에 흙담과 돌담이 남아 있어 문화적 가치와 관광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경관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장성군의 대부분 예 담장이 시멘트 블록으로 교체되고 흙담과 돌담이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성산의 이러한 소중한 자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와 역사를 담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수령들의 선정비와 공덕비가 남아있고, 수많은 스토리가 전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성산이다.

따라서 노거수와 흙담과 돌담 그리고 은행나무 길은 장성군이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보존해야 하고, 관광자원으로 육성해야 하며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은행나무에 따른 피해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줄여가는 방법을 마련하면 된다. 역사와 문화적 스토리텔링이 없는 도심에 심은 은행나무도 열매 등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자 그물을 씌워 피해를 줄이면서까지 은행나무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피해가 발생한다고 50년 이상 된 은행나무를 베어버리는 장성군의 이러한 행정은 성산의 가치와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할 것이다.

성산에 작업실을 만들어 작은 전시실도 갖고 있는 조각가 김용우씨는 성산에 흙담과 돌담 그리고 은행나무 가로수는 내가 성산으로 들어오게 만든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였다이 은행나무가 사라지는 순간 내가 여기 머물러야 할 이유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은행나무는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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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2019-02-09 17:53:12
http://blogfiles.naver.net/20140702_121/dkfvk1111_1404282265740AmcSn_PNG/%B0%A1%B7%CE%BC%F6%BC%F6.png
서울 강남 신사동 은행나무 가로수길 입니다.
머지않아 우리성산도 신사동 은행나무 가로수길 처럼 변할것 입니다.
전기선 지중화를 통해 쾌적한 공간조성
예술가들 유치 예술마을 조성
예술관련상가 조성 및 흙돌담길 복원 장성현스토리텔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