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에 생로병사가 있듯이 문자도 예외 아냐
100년 뒤에도 사용하는 문자는 한글과 라틴어뿐?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은 농노해방과 민주주의라는 엄청난 사회변화를 가져왔다.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되고, 철도와 배를 이용한 유통의 확산은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생산과 소비가 확대되었고, 상업이 활발해져 무역량이 급속도로 많아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100년 만에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 시스템이 주도하는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3차 산업혁명은 50년 만에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자동,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4차 산업혁명을 불러왔다. 세계적인 바둑천재인 이세돌이 인공지능의 컴퓨터 알파고와 바둑대결에서 무참히 패배한 것도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문자는 인쇄술의 발달을 가져오게 하였고, 활자의 발명은 종교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을 이끌었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의 소통은 몸짓이나 소리보다 문자가 더 효율적이게 되었고, 진흙판, 파피루스, 대나무 조각, 헝겊 그리고 종이에 기록된 문자는 멀리 전파되어 제국주의의 지배영역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 때는 문자가 지배권력과 지배자의 전유물이었던 것이 문자 민주화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반화되었다. 문자는 지식과 정보를 취득하는 가장 소중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한글 창제의 동기>
한글은 지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 가운데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한글이 만들어질 당시는 이미 종이가 발명된 뒤였으며 목판인쇄를 통해 다량으로 책을 발간할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확산력은 매우 높았다.
다만 한글 사용을 반대하는 일부 사대부와 기득권층의 반대에 의해 서민층과 아녀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한계가 있었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에 단 한 차례도 과거 시험의 답안에 한글이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서리나 지방의 하급 관리 시험에는 한글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훈민정음을 만든 동기에 대해 세종대왕은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하여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잘 펼치지 못하여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글자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뒤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최고의 가사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그리고 [용비어천가]다. 용비어천가의 내용은 125장 모두가 조선 개국의 위대함과 시련을 노래했고, 그것이 하늘의 명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강조한 것이다. 결국 조선 왕조의 사직을 보존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던 셈이다. 월인천강지곡은 수양대군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보상절을 지어 올리자 세종이 석가의 공덕을 찬송하여 지은 노래이다.
최만리가 한글 사용을 적극 반대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숭유억불의 조선통치 이념을 버리고 불교를 수용하는 듯한 세종의 태도에 대한 반발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최만리는 왕권과 함께 지배계급을 이룬 양반사회가 한글로 인해 정보의 독점이 깨지고, 이로 인한 기득권을 잃을 것을 염려한 부분도 없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동기 가운데 하나는 농민의 사회적 지위가 점점 높아지고,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국가에서는 백성들을 교화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적 윤리의식을 일반 백성들에게도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한글이 우리 민족에게 미친 영향>
한글은 문자의 기능을 초월하여 한민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한글은 우리민족을 문화민족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일제시대 한글사용을 금지했던 일제의 식민정책을 극복하기 위해 해방 뒤 남북의 정권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한글 강습운동을 편 결과, 짧은 시기에 문자 해독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5천년 역사에서 지금처럼 민족 구성원의 문맹이 없는 시기가 있었던 이유는 세종이 창제한 한글을 전용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독일 선교사로 20여 년 동안 조선에 머물렀고, 수많은 저서를 남긴 에카르트는 <조선어 회화 문법>(1923년 하이델베르크)의 서문에서 “만일 한 민족의 문화 수준을 언어와 문자에 따라 측정한다면 조선은 지구상에서 최상의 문화 민족일 것이다. 한글은 수천 개에 달하는 형용사와 동사를 가진, 표현력이 풍부한 문자이며, 조선어는 자연에 대한 조선인의 자세한 관찰과 풍부한 정신적 자산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언어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또한 민족 구성원간의 소통에 기여하였다. 남과 북이 두 개의 정권을 수립하였으나, 같은 언어와 문자의 사용 때문에 쌍방 간의 소통에 불편을 주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 믿음을 회복하고, 화해와 평화를 이루자고 약속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의 화해와 교류에 기여하였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 제572돌 한글날 경축식 축사에서 “겨레말 큰사전의 남북 공동편찬을 이어가려 한다”고 밝혔다. 겨레말 큰사전은 남북한의 언어통일을 목적으로 남북한 국어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최초의 국어대사전으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북한과 공동편찬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해마다 분기별로 편찬회의를 진행했지만 이명박정부 때인 지난 2015년 12월 이후 회의가 중단됐다.
이낙연 총리는 “세종대왕께서 한글과 땅을 주셨을 때 우리 겨레는 하나였다”며 “그러나 세계냉전은 겨레와 땅을 두 동강 냈고 조국 분단 70년은 말의 뜻과 쓰임새마저 남과 북에서 달라지게 바꾸고 있다”며 “남과 북이 달라진 것들을 서로 알고 다시 하나 되게 하는 일을 더는 늦출 수 없다. 이런 일이 쌓이고 또 쌓이면 남과 북이 세종대왕 때처럼 온전히 하나 되는 날도 빨리 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글이 남과 북의 화해와 교류에도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 한글은 남아있을까?>
100년 뒤에 돈(화폐)은 존재할까? 5천 년 전에 소 한 마리는 진흙으로 빚은 토큰(인형)으로 화폐를 대신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화폐(신용카드, 모바일화폐)를 사용하고 있는 요즘에는 현금을 갖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보기 어렵다.
젊은 사람들은 교통카드로 전철은 물론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고, 편의점에서 단돈 몇 백 원도 전자화폐로 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뒤 돈은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화폐라고 하는 물질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문자가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글이나 네이버 등에 저장된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정보와 지식 습득의 질이 달라진다. 데이터를 검색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활용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문자를 데이터로 전환하는 속도와 이를 검색하여 해석하는 편의성이 떨어지는 문자는 도태할 수밖에 없다.
13억 중국인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자로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데이터화를 이루는데 한계가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하지만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라틴어(알파벳)보다 훨씬 우수한 자음과 모음의 완성을 이루고 있다.
생명에도 생로병사가 있듯 문자도 창조와 소멸이 있기 마련이다. 최초의 문자였던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설형문자는 4천여 년을 사용하였다가 소멸되었다. 시리아어는 1500여 년 전까지 사용되었으며 성경을 보급한 기독교인들이 많이 사용하였지만 소멸되었다. 현재 지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 가운데 100년 뒤에도 사용할 수 있는 문자는 빅데이터 활용에 편리한 문자이다. 문자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한글은 데이터 활용에 최적화되어 있는 문자라는 것이다. 결국 100년 뒤에도 사용하는 문자는 한글과 라틴어 외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글의 위대함과 과학적 조합은 앞으로의 세대에 더욱 빛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