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를 남겨두라
한 자리를 남겨두라
  • 변동빈 기자
  • 승인 2018.10.08 13:47
  • 호수 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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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림 또는 기호를 쓰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5천여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초에 기호는 토큰이라고 하는 작은 진흙 덩어리로 동물의 수나 물건의 수량을 나타냈다. 하지만 토큰은 무게와 수량으로 인해 운반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호를 발명했다. 이 기호가 바로 문자와 숫자의 시초가 되었다.

가장 오래된 문자는 이라크 남부 지역에 살았던 수메르인들이 사용했는데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에 꼬챙이로 선 모양을 긁어 표시한 설형문자이다.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문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자는 알파벳과 한자로 3천여 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알파벳은 소리를 기록하는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이다.

처음엔 알파벳이 숫자 표기를 대신했다. 알파벳 a는 1을 뜻하고 b는 2를 대신하였다. 그런데 10에서 0(zero)을 표기할 수 없었다. 따라서 53과 530 그리고 503을 구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도 알파벳과 같이 처음엔 1에서 9까지 문자와 함께 사용되었지만 0이 없는 자릿수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0의 개념을 숫자에 응용한 수학자는 기원전 200년 경 인도인이었다. 인도에서는 일찍이 기원전 560년 경에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가 공(空)의 개념을 역설하였다.

공은 범어로 수냐(sunya)라고 하며 '텅 비어 있다.' 또는' 없다(無)'와 함께 쓰였는데 인도에서는 수학에서 0도 수냐(sunya)로 ‘한 자릿수를 남겨두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

서양철학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어야 논의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0(無)라는 개념도 있을 수 없다. 석가모니는 공(비어있는 것)과 색(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둘이 아니라고 역설하였다.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조계종 등의 소의 경전인 반야경의 핵심사상이기도 한다.

공(空)사상에서 0의 개념을 응용한 인도의 수학자들은 머지않아 마이너스(-)라는 개념을 창안하였다. 덧셈과 뺄셈, 곱셈, 나눗셈이 가능했고, 이로 인해 수학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주역은 공자가 이 책을 엮은 가죽 끈을 세 번이나 바꾸었다고 할 만큼 공자가 사랑하고 아낀 책이다. 천지만물은 태극인 음과 양의 기운이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음과 양이 생기기 전을 무극(無極)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극이 곧 태극이라는 말로 무극과 태극이 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불교에서 공과 색이 둘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수냐(sunya)의 비움, 한 자리를 남겨 둔다는 사고는 마이너스(-)라는 개념을 창안하였고 이 개념이 무한대(∞)라는 정의를 가져오게 했다. 무한대는 철학적으로는 순환의 개념이고, 공(空)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채우려고만 하고, 더하려고만 하며, 소유하려고만 한다. 이와 반대로 수행자들은 비우고, 덜고, 버리려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종교인 특히 종교 지도자가 비우고, 덜고, 버리려는 노력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붓다가 눈앞에서 천상의 법을 설해도 이를 듣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무리 구원의 손을 내밀어도 그를 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의 고통은 채우고, 더하고, 소유하려는 데서 더욱 커지고,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일부 수행자들은 굶거나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고통을 택하여 욕망을 억제하려고 하기도 했다. 한 때 인도에서 유행했던 자이나(jina)교 수행자들은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살아가기도 했다.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준 김삼환 목사는 이를 반대하는 같은 교단의 다른 목사들을 마귀라고 표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새로 총무원장을 선출했지만 개혁세력들은 적폐세력의 총무원장 돌려막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모든 원인은 바로 종교지도자들마저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들어 탐욕의 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자릿수를 남겨두는 여유가 마침내 무한대를 알게 했다. 여유는 다 채웠을 때가 아니라 부족했을 때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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