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정치
날씨와 정치
  •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8.08.20 16:46
  • 호수 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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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폭염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모이면 으레 시작하는 얘기가 더워서 못살겠다는 말이다. 워낙 폭염이 길어지다 보니 24시간 내내 에어컨 틀어 놓고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피서 방법도 없다. 오죽하면 태풍이 오기를 기다릴까. 언제 폭염이 그칠지, 기대를 걸고 날씨뉴스를 주목하지만 시원한 날씨 소식은 요원하다.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요즘의 날씨뉴스와 정치뉴스는 매우 비슷하다. 그 외에도 날씨뉴스와 정치뉴스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날이나, 대형 사건사고가 없는 평온한 날이나 날씨뉴스는 항상 어김없이 등장한다. TV뉴스의 말미는 항상 날씨로 마무리한다. 다음이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뉴스의 메인화면에도 날씨정보가 빠지지 않는다. 정치뉴스도 거르는 날이 없다. 청와대나 여의도 국회 소식이 빠지는 날은 상상하기 힘들다. 워낙 폭염이 지속되다보니 날씨뉴스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긴 했지만, 평상시에는 훨씬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둘째, 차별성이 없다. 어제의 뉴스와 오늘의 뉴스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날은 어제 날씨뉴스를 그대로 재방송해도 문제될 게 없다. 언론사 간의 다른 점도 거의 없다. TV 날씨 뉴스는 20대 초중반의 여성이 전국 10여개 대도시의 날씨를 1분 내외로 요약해준다. 거의 모든 언론사가 동일한 형식을 사용하기는 정치뉴스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인들이 여야로 갈려 서로 비난만 하고 국민여론은 무시한다는 설정이 보편적이다. 이런 틀 밖에 있으면 뉴스로 취급되기 힘들다. 20-30대 기자들이 50-60대 정치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어 전달하는 상투적인 방식도 언론사간 차이가 거의 없다.

셋째, 취재원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공적 기관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날씨뉴스의 취재원은 기상청, 정치뉴스의 취재원은 청와대와 국회이다. 국민들이 불신하고 원망하는 국가기관 순위 1-2위를 다투는 곳이다. 물론 청와대와 국회가 항상 잘못하는 것만은 아니고, 기상청이 항상 오보만 하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는 소위 적폐청산에 앞장서기도 하고, 국회는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하고, 기상청은 태풍의 진로를 예측해 재난예방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국민적 불신이 높은 이유는 이들이 잘한 일이 드물기도 하지만,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것에 더 집중하는 언론의 생리 탓이기도 하다.

정치뉴스와 날씨뉴스의 공통점은 정치와 날씨의 공통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광범위한 영향력이다. 어느 누구도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날씨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인간은 성별이나 연령이나 소득이나 주거지역 등의 차이에 따라 주목하는 뉴스가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정치와 날씨는 그러한 인구학적 경계를 초월하는 뉴스 관심사인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인들과 기상청을 지극히 불신하면서도 정치뉴스와 날씨뉴스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정치뉴스나 날씨뉴스만큼 국민적 관심을 동시에 받을만한 뉴스거리가 많지 않다. 게다가 받아 적어 전달만 하면 되기 때문에 쉽고 저렴하게 뉴스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날씨와 정치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날씨는 사람이 바꿀 수 없지만, 정치는 사람이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날씨를 바꾸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여름날 무더위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맑고 시원한 가을날이 돌아온다. 반면 정치는 그렇지 않다. 정치적으로 맑고 청명한 날은 저절로 도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도 이젠 사라지고 있다. 날씨마저 정치를 닮아가고 있다. 점점 자연스러운 날씨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4계절의 질서가 깨지고 폭염과 혹한이 반복되는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고통스러운 날씨와 구태의연한 퇴폐정치가 4계절 내내 반복되는 세상이 될 것 같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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