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그리고 편견
유혹 그리고 편견
  • 발행인 김병국
  • 승인 2018.07.31 16:24
  • 호수 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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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가슴을 빨고 있는 한 장의 그림이 있다. 여인의 팔은 노인의 등을 만지며 더욱 가슴을 취하기 좋은 자세를 취해 준다. 그리고 옆 창문에는 두 명의 남자가 이 장면을 훔쳐보고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포르노그라피를 닮은 외설스럽고 퇴폐적인 그림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야기를 더하면 판단이 달라진다. 이 그림은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의 [키몬과 페냐]다.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아사형(餓死刑)을 받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어헤친 딸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목말라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장면이다.

똑 같은 그림을 보고 음란하다고 판단했는데, 금방 돌아서 숭고하기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습관일까 인격일까. 아니면 주변의 유혹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상사인가.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유혹을 받고 어느 부분에서는 편견에 얽매이는 것일까.

지면의 여유를 핑계 삼아 그림 이야기 조금 더하면 이러하다. 동양의 묵객들과는 달리 서양의 그림쟁이들은 여신(女身)을 발가벗겨 여신(女神)을 만들고자 발버둥 쳤다. 나신(裸身)의 과정을 거쳐 완벽한 미의 여신, 비너스를 구현해 내고자 했다. 그렇다고 기록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지나치게 신뢰했음이다.

루벤스도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인의 가슴을 풀어헤치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키몬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여인의 가슴을 그리면서 음란성은 털어내고 예술성만 남겨야했으니 지난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현재는 미술관에 걸려있지만 당시의 루벤스는 이 그림으로 인해 외로운 노년을 보냈다. 키몬을 살려내고 자신이 아사형을 대신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렇듯 인간은 여러 편견의 함정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 루벤스처럼 스스로 유혹의 마술에 걸려들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은 주변의 속삭임에, 가짜 뉴스의 덫에 걸려 살아간다. 무지와 정보부족에 의한 판단 미숙이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무섭게 인격으로 굳어져 사회생활을 한다.

인간의 영혼을 재단하려는 게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텔레스’만이 아니다. 끊임없이 소곤대는 유혹의 용어들은 우리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축구에서 수비수가 공을 보지 않고 상대의 발을 보면 속아 넘어가듯이 상대의 눈을 보지 않고 입을 보면 금방 함정에 빠진다.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들은 대체로 유혹의 화법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아이들놀이처럼 술래인 당신의 등 뒤에서 유혹의 주장들을 말하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온다. 애당초 소리가 있는 동안 우리는 돌아볼 수 없는 규칙이다. 불합리하지만 방법은 없다. 그저 경제학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 사회를 정화시키는데 분주해주길 바랄뿐이다.

편견의 함정에 대한 취약 계층은 구분을 좋아하는 이들이다. 이념, 직업, 성별, 정치, 등등이런 단어를 두고 선긋기 하는 이들이다. 얼핏 선거에 이긴 자들이 지역 헤게모니를 독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항도 또 다른 권력의 공유지분이다. 쉽게 설명하면 으스대는 그룹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훼손을 기준으로 하면 더욱 그러하다.

오늘의 눈으로 속단하지 말자. 그럼 [키몬과 페냐] 같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물론 함정에 빠져도 통증이나 부끄러움 같은 건 느낄 수 없다. 그러니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습관이 인격으로 굳어진다는 말의 의미를 새기면 사뭇 진지해지며 거울이 보고 싶어진다. 또 그것이 이글의 이유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한다. 그 속에는 ‘달콤한 정보’와 ‘불편한 진실’이 있다. 쌍둥이처럼 닮은꼴이다. 선별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세상은 반드시 진보해야 하니까. 물론 모든 삶을 정의롭게 살아갈 수는 없다. 어차피 정의는 여름날의 ‘샌달’이든 어느 학교 교수 ‘센들’(Michael Sandel)이든 이들의 몫이니까.

그렇다고 발로 차버릴 수는 없다. 우리의 지분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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