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부재하는 사회
어른이 부재하는 사회
  • 발행인 김병국
  • 승인 2018.07.18 10:39
  • 호수 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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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백보’, 누구나 아는 말이다. 전쟁터에서 오십 보 달아난 자가 백보 도망간 자를 비웃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 갈등을 야기한 이들로 대비해 본다면 앞선 자와 뒷 선자들의 거리는 몇 보쯤일까. 또 그들은 누구일까.

예전에는 옷깃만 틀어져도 지적하고 고쳐주는 어른이 있었다. 주민간의 이견이나 지역 간의 갈등을 앞장서 해결하는 사회의 어른이 있었다. 나름의 규약이나 규범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존경하는 어른의 말씀이니, 하고 모두들 따랐다.

작금의 시대에도 통용되는 말인가. 물론 시대가 변했다. 단순 농경시대에서 다양화되는 직업 더불어 분주해진 일상. 타인의 삶에 관여할 여력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른의 부재, 이 이유가 전부일까. 그래도 선비의 고장 ‘문불여장성’인데 말이다.

이유를 찾아보면 이런 부분도 있다. 선거제도의 정착과 선거 참여 행위가 길항작용을 한다.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참정권 확산이라는 우호적 결과가 사회적으로는 어른 즉, ‘말씀’의 효력이 사라져가는 부조리를 낳는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펴보면, 주변에 어른이라 지칭되는 사람들치고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회장, 족장, 위원장 등등 감투를 갖고 있는 이들은 한결같이 어느 한편에 속해 지지자를 응원하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해왔다.

후보자와 불가피한 인연을 가진 이도 있었을 터이지만 안정된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 심리와 함께 어느 한편에 서지 못하면 선택을 외면당한 듯한 존재의 미약한 인식이 조급증을 불렀으리라.

그러나 중간자, 혹은 중간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다. 중간층은 여론의 조정 역할을 한다. 중간층이 두터우면 극단의 주장들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그 중간지대가 없거나 미약하다. 여론 흐름에 무지한 저 시골 할머니들의 숫자를 보고 중간지대가 풍부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른들이 모두 자신을 위해 중간지대 밖에 마음을 맡겼다. 심지어는 사회단체나 시민단체, 게다가 언론마저 흐름에 편승했다. 오늘날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극단의 주장들은 알고 보면, 백보 밖에 있는 도망자들의 응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문불여장성’은 사실성이 있는가. 전가의 보도처럼 회자되는 우리군의 상징적 표현에 오류는 없는가. 현실에 비추어보면 어른도 선비도 없는 고장에서 누가 ‘文’을 읽고 또 그것을 실천한다는 말인가. 논어의 1장1절이 무너져버린 슬픈 고장에서 무슨 ‘文不如’란 말인가.

사회상의 반증으로 미뤄보면, 처음부터 대원군의 우스갯소리가 아닌가 싶다. 며느리에게 안방을 빼앗긴 노친네 이하응이 이 고을 저 고을 몸을 움직이며 중얼거렸던 ‘팔불여’… 땅이 넓고, 돈이 많고, 들이 기름지고 등등을 이야기하다 장성에는 찾을 게 없어 ‘文’이 높다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거울에 비친 우리사회가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말이다.

꼭 집어 고유명사로 지칭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혼탁한 사회상을 보고, 손가락질 해대는 자들만의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오십보백보의 태도다. 묵시적 동의도 다를 바 없다.

명예나 명분을 목숨만큼이나 중시했던 선비 정신은 어디로 갔을까. 고을의 고통에 아픔을 느꼈던 어른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훈계는 사라지고 시대정신을 잊은 자의 ‘선비질’이나 ‘지적질’만이 남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우리 고을 곳곳에 만연한 당동벌이나 유유상종은 또 어찌해야 할까

 

지나친 자조감이라 치부하며 외면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빈센트는 정신을 놓치고 그의 귀를 잘랐다. 그리고는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아 자화상을 남겼다. 그 그림 한 장의 값이 우리 장성군 1년 예산을 웃돈다.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을 남겨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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