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달라진 풍경 ‘꽃보다 부정청탁금지법’
스승의 날 달라진 풍경 ‘꽃보다 부정청탁금지법’
  • 권진영 기자
  • 승인 2018.05.21 16:43
  • 호수 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사·존경 사라져가는 스승의 날..폐지가 답?

얼마 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지역 모 초등학교 담임 A씨는 20여 명 학생의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김영란 법 때문에 스승의 날 캔커피 하나도 받을 수가 없고, 키프티콘 등을 보내는 것도 법에 저촉이 되니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 법)’ 시행 2년째를 맞는 2018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일선 학교와 교사들은 안내장, 전화, 문자 등을 통해 ‘캔커피, 카네이션, 과일 하나도 김영란 법에 저촉되니 보내시면 안된다’는 내용을 학부모들에게 전달했다.

스승에 감사하고 노고를 기리기 위한 스승의 날을 과연 지금의 교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김영란 법 시행 이후 달라진 스승의 날 풍경을 짚어봤다./편집자 주

스승의 날 5월 15일은 큰 스승 ‘세종대왕’ 탄신일

발렌타인데이나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많은 기념일이 외국에서 유래된 데 비해 스승의 날이 우리나라 고유의 기념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 강경여고 RCY(청소년적십자)단원들이 건강이 좋지 않으시거나 퇴직하신 선생님들을 방문하는 봉사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1963년 RCY 중앙협의회가 ‘5월 26일을 은사의 날로 지정하자’고 건의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후 1965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를 옮기고 정식 명칭을 ‘스승의 날’로 정하였다.

1973년 정부의 서정쇄신방침(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없앤다는 취지)에 따라 사은행사를 규제하게 되어 일시 폐지되었다 1982년 부활, 오늘날에 이르렀다.

스승의 날을 세종대왕 탄신일로 정한 데는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참된 스승이 되어라’는 의미와 ‘세종대왕을 향한 존경의 마음처럼 스승께 존경과 사랑을 표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지난해 발생한 교권침해만 2천5백여 건에 달한다는 통계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 교사들 사이에서는 “땅으로 추락한 교권에 스승의 날은 그저 허울만 기념일일 뿐이다”는 하소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일명 김영란 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스승의 날은 교사들에게 더욱 가시방석이다.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과도한 법 해석에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작은 감사의 마음도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서로 눈치만 봐야 하는 실정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스승의 날 학교 분위기를 묻자 “무슨 분위기요? 그냥 보통 날과 똑같은데요? 반별로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거나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것까지 알 수는 없지만, 함께 행사를 하거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아요”라고 말했다.

손 편지, 종이 카네이션, 영상 제작 등 학생들이 나름 아이디어를 내서 선생님께 고마움과 사랑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감사와 존경이 넘쳐야 할 스승의 날이 더 서글프다는 교사들이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등장한 ‘스승의 날’

스승의 날 전후 ‘대한민국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은 스승의 날 폐지를 요구하는 다수의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실제 게시판에 실린 스승의 날 관련 청원의 대부분은 김영란 법 시행 이후 불편해진 스승의 날을 옮기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영란 법 때문에 선생님들이 카네이션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니 김영란 법에서 스승의 날 카네이션은 빼주던가 아예 스승의 날도 국가공휴일로 만들어 그날 스승과 학생의 접촉이 없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영란 법이 생기면서 스승의 날 의미가 무색해졌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아예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말이 나온다’는 식이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가 된 엄마라고 밝힌 학 학부모는 “스승의 날 선생님께 드릴 편지와 1천원짜리 오렌지주스 하나를 들고 선생님 드릴 생각에 행복해하며 학교에 간 아이가 하교할 때 얼굴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이었다”며 “주스 한 병에 담긴 8살 아이의 순수한 마음도 맘 편히 받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상처받은 아이의 부모에게 죄송하다며 사과를 해야 하는 선생님의 처지가 참 슬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여기에 “더 어이없는 일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값비싼 상품권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고 있으니 공평하지 못한 김영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구리의 한 고등학생은 “중학생이던 시절 스승의 날이면 일찍 나와 교실을 꾸미고 반 친구들끼리 천원, 2천 원씩 걷어 케이크나 카네이션을 드렸던 추억이 있는데 과연 지금 초등학생들은 이런 문화를 알까? 작은 선물도 ‘제발 하지 마라’ 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 한 학생의 “스승의 날을 맞아 반에서 케이크와 편지, 꽃을 준비해서 선생님께 드렸는데 담임선생님께선 ‘카네이션도 받지 말라는 방침이 내려왔다’며 케이크는 드시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으셨고 꽃은 반에다 장식하셨다”며 “학생들이 선생님께 존경을 담아 드리는 케이크 심지어 꽃조차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럴 거라면 스승의 날은 왜 존재하는가? 적어도 스승의 날 이런 정도를 받을 수 있게 수정해달라”는 제안에 청원동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동의 댓글 중 “선생님들을 마치 비리의 온상인 듯 몰아가는 거 아닌가?”라는 내용이 눈에 띈다.

청원을 올린 한 교사는 “스승의 날 정작 교사는 주체가 되지도 못하고, 카네이션조차 거절하는 ‘유난 떠는’ 교사가 되는 것이 현실이니, 그저 하루가 고통스럽지 않게 스승의 날을 차라리 없애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반부패 효과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카네이션 한 송이, 커피 한 잔도 교육 현장에서 주고받을 수 없게 된 요즘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에게 당부 문자를 보내고 스승의 날을 덜 부담스럽게 보내려고 아예 휴교를 하는 학교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그런데 가르칠 시간이 없다?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또 있다.

가르칠 교(敎), 스승 사(師).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2018년의 대한민국 교사들은 가르칠 시간이 없다. 서류, 공문 등 행정 처리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4시간 24분. 지난해 교육부가 공개한 교사들의 하루 평균(수업일수 192일 기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사용시간이다. 업무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행정 업무를 보는데 쓰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교육부가 전국 유·초·중·고교 교사 1,0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교사의 87%가 “행정 업무가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서류, 공문 처리에 기안까지 작성하느라 교재 연구할 시간도 부족하고, 특히 학기 초에 담임이라도 맡게 되면 아이들 얼굴 익히고 파악할 시간보다 행정 처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며 “학교폭력위 등 학교 업무까지 맡아 문제라도 생기면 길게는 몇 달 동안 그 사안에만 매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교사의 행정 업무 가중은 곧바로 수업 준비시간 또는 학생 면담 시간의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교육부 조사에서 교사들이 하루 평균 2.1시간을 행정 업무에 쓴다고 답한 반면 생활지도에는 1.8시간, 수업연구에는 1.3시간 밖에 할애하지 못한다고 답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원의 행정 업무 경감’은 정권마다 내놓는 교육 공약 중 하나이고 교육부에서도 교무행정인력 전문성 강화를 위한 연수를 실시하고 시도교육청별로 업무 부담 경감 우수 사례를 선발하고 있지만 교사들은 이런 방법으로는 실질적인 여건 개선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만족도 조사는 교사들이 꼽은 대표적인 행정 업무 사례에 속한다.

절차·형식에 얽매이는 행정 서류나 공문 등을 과감하게 폐지·개선하고, 적어도 담임을 맡은 교사에게는 교육, 학생지도에 필요한 업무 이외에는 별도 업무를 부담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선 학교보다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시스템 개선과 인식 변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실제 교육부·교육청과 같은 상급 기관에 보고할 자료·공문 처리가 담당 교사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업무 부담 요인이기 때문이다.

교육지원청이라는 이름에 맞게, 일방적인 공문 하달이나 보고 명령 보다는 일선 학교와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시스템 개혁과 업무 지원이 절실하다.

가르치는 일이 행복한 교사가 행복한 제자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전라남도 장성군 영천로 168 3층
  • 대표전화 : 061-392-2041~2042
  • 팩스 : 061-392-2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동빈
  • 법인명 : (주)주간장성군민신문사
  • 제호 : 장성군민신문
  • 등록번호 : 전남 다 00184
  • 등록일 : 2003-07-04
  • 발행일 : 2003-08-15
  • 발행인 : 류이경
  • 편집인 : 변동빈
  • 장성군민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장성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snews1@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