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다의 봄
두 바다의 봄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8.04.23 13:54
  • 호수 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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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군외면 어디에 아주 작은 바다가 있다. 바닷가에 늘어선 방풍림에 가려 얼른 눈에 뜨이지 않는다. 긴 활처럼 휘어진 바닷가에는 작은 갯돌들이 빼꼭히 널려 있다. 모래사장이 아니어서인지 인적이 드물다.

목선 두어 척이 긴 뱃줄에 매여 파도에 출렁거릴 뿐. 그 외로운 바닷가에 한 사내가 서 있다. 젊음이 나를 거기로 데리고 갔다. 그가 뭍으로 간 줄도 모르고 천리 길을 갔다가 파도쳐 오는 바다를 해종일 홀로 바라보았다.

바다는 갯돌들이 깔린 층층을 기어올라 왔다가는 룰룰룰 수 만개의 갯돌들을 건드리며 내려가곤 또 기어 올라오고 했다. 그 올라오고 내려가는 파도가 자아내는 웅장한 소리가 세계의 끝을 생각나게 했다. 여기가 이 세계의 끝이라고 합창하는 것만 같았다.

두 볼이 얼얼하게 부는 이른 봄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흩뜨리고 하늘과 땅이 너무 멀어서 그런 절망감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바닷가 동백 숲에서 이글거리는 숯불같은 동백꽃들이 댕겅댕겅 목이 떨어져 푸른 바다에 떠가는 것이 슬퍼 보여서였을까.

해가 저물도록 바다와 갯돌들이 협연하는 세상 끝의 음악에 젊은 날의 상처를 달래고 있었다. 거기에 내 청춘이 있었다.

‘청춘은 함정이다.’라는 것을 나는 몰랐다. 열정에 이끌리어 청춘이 덫인 줄도 모르고 내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조만간 꿈처럼 사라져버릴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세계의 종말을 본 듯한 절망감에 얼어붙어버린 젊은 날. 나는 나를 안아주어야 했다. 그렇게도 젊음은 서투르고 괴롭고 서러웠다. 괴테가 그랬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4월, 지금도 그 바닷가에는 동백나무숲에서 새빨간 동백꽃들이 하마 시나브로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떨어진 동백꽃들이 푸른 파도에 실려 둥둥 바다와 바다를 떠돌며 흘러갈 것이다. 그 생각만 해도 나는 젊은 날의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두 팔로 내 몸을 감싸며 나를 달랜다. 그래,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바다의 파도소리와 동백꽃과 저무는 해는 결코 지나가지 않고 오히려 더 생생히 그리움 속에 있는 것을 대관절 어쩌란 말이냐.

사람은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은 슬픔과 안타까움과 좌절을 경험한다.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린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알랴. 삶이 어떻다는 것을.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멀리서 폭풍이 몰려오는지, 무지개가 뜨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알 수 없음, 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기어이 살아남는 것, 그것이 생명의 불변의 공식이다.

영암의 외진 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 있는 작은 암자를 찾아간 것은 거기, 외진 바다에서 왕인 박사가 낚시질을 했다는 전설 때문이 아니라 스님한테서 무슨 법문이라도 들을 양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스님 방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바깥에서 쏴 하고 비 오는 소리가 났다.

창문을 내다보니 비는 오지 않았다. 환청인가. 스님의 말씀 사이사이로 또 비 오는 소리가 들이쳤다. “스님, 지금 밖에 비 오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스님은 웃으며 나를 절 바로 옆 절벽 위로 데리고 갔다. 파도가 저 아래 절벽에 부딪쳐 그 소리가 절벽을 타고 올라와서는 이윽고 암자 마당에 쏴 하고 소리들을 부려 놓는 것이었다.

느낌은 진리가 아니다. 젊은 날은 흔히 느낌에 기대어 열정을 불태우기 쉽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느낌, 그건 얼마나 황홀한가 말이다. 그는 내 두 팔의 국경선 안에 있어야 할 사람 같았으니까. 대체 그런 감정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겠는가.

느낌 때문에 젊은 날엔 숱하게 넘어지고 일어선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리석음과 열정을 탓해야 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청춘이 있었으니 말이다.

봄날 찬란한 벚꽃이 비바람에 꽃비가 되어 사라져갔다. 젊음도 그렇게 한때를 장식하다가 사라져간다. 그러기에 젊음은 아름다운 시절이다. 사라져가기 때문에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알아차리는 시절은 너무나 뒤늦게야 찾아온다. 책을 거의 다 읽은 후에야 범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추리소설처럼.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은 때로 지나간 날을 회상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보이지 않는 재산은 지난날의 기억이다. 추억을 잊어버린다면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셈이다. 인생이란 무수한 추억의 연결과 연결이다. 추억들이 길게 이어져 있는 행로다. 나는 그 길 위에 있다.

만일 그 장면들을 아름답게 보기로 결심한다면 부끄럽고 어리석었던 것까지도 빛나게 채색되어 다가올 것이다. 그러므로 삶은 아무리 남루하고 비천하다 해도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젊은 날 숨겨둔 두 개의 바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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