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하는 것도 착취다.
방관하는 것도 착취다.
  • 최영우 기자
  • 승인 2018.02.26 11:20
  • 호수 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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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는 1908년 일제 통감부(統監府)가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조선 착취기관이다. 일제는 1908년 동양척식회사법으로 대한제국 정부에 강요해, 1천만 원 자금을 가지고 한국에서 척식사업을 목적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같이 일본 정부의 직접적 지배하에 독점적 특수회사를 설립했다.

일제는 이에 일정기간 상당액의 보급을 시행하고, 한국 정부는 사업용지의 일부를 제공하기 위하여 국유지를 출자함으로써 한국이 자원개발 식산 진흥을 담당하게 하며, 일본으로부터 진보된 농법을 시범함과 동시에 기업가의 이자가 싼 자금을 공급하여 식산사업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설립하였으나, 실제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할 목적으로 창립됐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총재 우사가와 카즈마사는 1910년 이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토지를 헐값으로 매입했다.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된 이후인 1920년 말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지는 9만 7천여 정보(1정보.1ha.3000평)에 달했다.

일제는 국유지를 강제로 불하하여 막대한 면적의 산림지를 가로채 1942년 말 16만여 정보의 임야를 소유했다. 강제로 빼앗은 토지를 소작인에게 빌려주어 50%가 넘는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고, 영세 소작농에게 빌려준 곡물에 대해서는 20% 이상의 고리를 추수 때 현물로 거둬들였다. 또한 그 소유지는 일본인 이주자에게 싼값으로 양도되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직영지 면적은 조금 감소되었으나, 1937년 동척이 직접 경영한 경작지 면적은 6만여 정보에 달하였다.

일본제국주의는 각종 특혜를 주어 1910∼1926년에 일본인 이민 희망자 약 1만 명을 선발하여 침략의 담당자로 활용했다. 이들 이주민은 경기·경상·전라·황해·충청도에 가장 많았는데, 그들은 대한제국 국민을 착취 압박한 일제의 앞잡이가 됐다. 그 결과 1920·1930년대는 한국 농민의 격렬한 소작쟁의가 있었으며, 1926년 12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 열사가 동척을 기습하여 폭탄을 투척하고 민족적 증오를 표현하였다. 일제말기 우리농업인 형태를 보면 자영농>자소작농>소작농>화전민으로 하향 변화한다.

70대 농민에게 “농사지으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냐”고 여쭈었다. 고령의 농민은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유신 때 통일벼로 자식들 배 따순 적은 있었다”고 답했다.

그렇다.

5천년 역사 이래 농업인들이 한번이라도 행복한 적이 있었을까? 위에 열거했듯이 근대 일제에 수탈당하고, 중국 한나라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약소국의 왕정 아래에서 농민들이 어찌 배부른 적이 있었고 행복한 적이 있었겠는가!

70대 농부의 하소연을 듣다

삶의 질은 나아지고 가난하지만 배고픈 시절은 한참 지난 지금, 70대 고령의 농부는 왜 한참을 망설이다가 기자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을까.

이 고령의 농부는 자식이 셋인데 두 딸은 서울과 LA에 살고 있고 아들은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닌단다.

“그럼 아제는 행복하시겠네요”

“뭔 소리여, 지금 옛날처럼 배고파 죽는 사람 있단가? 형평성이 맞아야제. 배운 것이 농사 뿐인디 자식 따라 서울 살수도 없는 것이고. 작년에 벼농사 40마지기(소작포함) 지어서 기계 삯. 품삯. 건조료 내고 나니 남는 것도 없는거여. 나 올해 100만원을 손해 봤네”

이유인즉 이렇다.

동화면에 사는 김 농부는 작년에 42마지기 농사를 지어서 200가마니는 공공비축미(1등 5만원)로 수매하고, 200가마니 정도는 농협통합RPC(1등 4만5천원)에 수매했다. 1등 가격의 차이가 5천원이 넘다보니 결국 차액이 100만원이 넘었다.

김 씨는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에 농협에서 운영하는 농협통합RPC가 너무 많이 남겨먹으면서, 농가에게 피해를 감수하라고 하는 격이다”, “작년에는 정부의 공공비축미 시장격리조치로 시중쌀값이 전년대비 1만5천 원 이상 올랐고, 현재시중가도 최소 5만원인데도 농협RPC에서만 저가에 매입하여 농민에게 손실을 입혔으면서, 누구 한사람 책임지는 사람 없이 조합장은 적자타령만 한다”는 푸념 섞인 하소연을 했다.

사실이 그렇다.

정부가 3차에 걸쳐 전량수매해서 잔량은 거의 없고, 농협 RPC에 출하하는 농가는 고령의 소농가인 탓에 피해규모가 관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 사실이고, 금액 또한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농가의 가마당 5천원의 손실에 아무도 책임지는 이 없는 장성농업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다수농가의 피해에 뒷짐 지고 있는 곳이 어디 농협뿐이겠는가?

김 농부가 한마디 덧붙였다.

“근디, 군민 머슴이라던 군수는 이런 사연을 알랑가 모르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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