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넥타이
일곱 개의 넥타이
  • 문틈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7.10.23 14:10
  • 호수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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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경제학상의 수상자인 미국 시카고대의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교수는 흥미로운 경제이론을 제안한다. 이른바 행동경제학이라는 것인데, 주류경제학에서는 사람은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한다는 전제하에 이론을 전개하는데 반해 세일러 교수는 거꾸로 비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이론을 세운다.
예를 들어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었더니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80퍼센트의 효과를 얻게 되었다. 학자금 융자 때 서류가 복잡하면 꺼려하던 사람들도 서류 양식을 간단히 하면 대거 신청을 한다.
행동경제학은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인간의 그런 비합리적인 심리 상태를 숙고한 행동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정책을 실시하여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매우 흥미로운 경제이론이다.
그런데 내 흥미를 끈 것은 세일러 교수는 돈에는 꼬리표가 있다고 한 것. 집 살 돈, 여행비, 학비 등. 이것을 그는 심리적 구좌(mental account)라고 명명한다. 이에 반해 주류경제학에서는 돈이 은행계좌로 들어오면 그 돈으로 무엇을 사든, 출처가 어디든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돈은 다 같은 돈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에 문외한인 내가 뭐라 말할 건더기는 없지만 갑자기 생긴 공돈이든 직장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이든 같은 돈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행동한다. 많은 사람들은 공돈이 생기면 사람들은 흔히 평소 하지 않던 소비행태를 보인다. 어디 비싼 식당에 가서 크게 한턱 낸다든지. 비합리적인 경제행동의 대표적인 사례다.
세일러 교수의 경제이론은 가령 주식투자의 경우 개인은 개별주식에 투자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애널리스트들도 잃는다는 것이다. 주식시장 같은 비합리적인, 심리적인 시장에 개인이 뛰어들어 이기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자, 여기서 이 이론에 빗대어 내 경제생활을 살펴본다. 어느 편이냐 하면 비합리적인 경제생활보다는 되도록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지향한다. 아들 녀석은 인터넷에서 시장가격보다 아주 싼 물건이 나오면 ‘이 기회에 저것을 안 사두면 손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안 사면 되레 이익’이라는 시각이다.
나는 극히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살 필요가 없다는 거의 금욕에 가까운 경제생활을 한다고 할까. 때문에 아무리 광고 문구가 그럴싸해도, 아무리 특별세일이니 해도 전혀 관심 밖이다.
직장에 다닐 때 일 년 열두 달 늘 같은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군청색 바탕에 빗금 무늬가 새겨진 값싼 것이었는데 그 넥타이 하나를 별 생각없이 착용하고 다녔다. 그 넥타이가 딱히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넥타이라곤 그것 하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냥 그걸 맸을 따름이다. 넥타이는 자신의 기호나 성향을 표현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와이셔츠에 넥타이가 반드시 짝해야 하는 부속품으로 보았다. 마치 빵과 버터의 관계처럼
“부장님은 항상 군청색 넥타이를 하고 다니시는데 되게 그 넥타이가 마음에 드시는가 봐요?”
어느 날 여직원이 내게 물었다. 아마도 사시사철 똑같은 넥타이만 매고 다니는 내가 이상했거나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 그래요. 그런데 나는 좋아하는 물건은 여러 개 사서 쓰는 버릇이 있어서 이 군청색 넥타이를 일곱 게 사다놓고 매일 새로 바꿔 매고 다니는데 몰랐죠?”라고 우스개 말을 했다. 여직원은 할 말을 잃고 멍 때리는 표정이 되었다. 그때 어떻게 그런 재치있는 말이 생각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군청색 넥타이 한 개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이상은 필요가 없었다. 그 한 개뿐인 넥타이를 습관처럼 매고 회사에 다녔던 것이다. 넥타이를 한 개만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이렇다. 우선 여러 개의 넥타이를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리고 돈을 들여 넥타이를 여러 개 살 이유가 없었다.
멋? 그런 것은 당최 몰랐다. 옷 잘 입고 좋은 시계 차고 좋은 구두 신고 비싼 가방 들고 다니는 따위에는 전혀. 하여튼 그런 것에 무심한 편이었다. 지금도 그런 식으로 살고 있다. 구두며 혁대며 한번 사면 그것이 닳아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까지 쓰고 있다. 닳아빠져서 못쓰게 되면 고치고 또 고쳐서 쓴다.
며칠 전 집을 나섰다가 밖에 내다버린 이삿짐 속에 멀쩡한 벽시계가 눈에 뜨여 그걸 주워다가 전지를 넣었더니 초침, 분침, 시침이 정확하게 돌아갔다. 벽에 걸어두니 초침소리가 시간 가는 것을 정확히 보여준다. 시계는 정확한 시각을 가르쳐 주면 충분한 물건이다. 시계에 대해서 그 외의 요구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 만일 해시계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집에 최소한의 물건을 구비해놓고 지낸다면 매우 편하고 경제에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남 하는 대로 따라서 살다보면 가계부에 주름살이 지고 미래가 불안해진다. 정해진 코스다. 그렇다고 쓸 데 안 쓰면 좀팽이가 된다. 가령 친지의 경조사, 안전한 식품 같은 데는 관심을 기울인다. 소비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넥타이 한 개 가지고 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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