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조류 인플루엔자)의 공포에 이어 ‘살충제 달걀’ 파문으로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달걀 출하가 금지되자, 양계농장과 소비자 모두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다행히 장성 삼서면 산란계농장 두 곳은 15~16일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실시한 농약 잔류물질 전수검사에서 피프로닐은 검출되지 않았고, 비펜트린도 각각 0.0026㎎/0.0065㎎로 기준치(0.01㎎ 이하) 이하 판정을 받아 달걀 판매 및 유통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일부에서 ‘대규모 양계 농가가 밀집 사육을 하는 한 살충제 공포는 계속될 것이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밀집사육으로 발생한 ‘살충제 사태’
가로 19.6㎝×세로 21.2㎝=416㎠. 우리가 흔히 보는 A4 종이 한 장 크기의 3분의 2. 이 작은 사각형이 닭 한 마리에게 허용된 공간이다.
국내 유통되는 달걀과 닭고기의 99% 이상이 이렇게 길러지는 닭에서 나온다.
공장식 축사인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에 갇혀 날개 한번 제대로 펴 보지 못한 채 알만 낳다 폐기처분되는 닭들은 더위와 질병 등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서로를 쪼아 죽이기도 하고, 조류 인플루엔자는 물론 닭진드기(일명 와구모)에 고통받아왔다.
지난 14일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이 검출된 경기도 남양주의 A농장도 대규모 밀집 사육 양계 농장으로, 공장식 축사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번 달걀 살충제 검출은 산란계 사육 단가를 낮추기 위해 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넣어 키우는 ‘밀집 사육’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일반적으로 야생 상태의 닭은 땅에 몸을 문지르는 ‘흙목욕’이나 발로 모래를 뿌리는 등의 동작으로 몸에 붙은 해충을 없앤다.
그러나 좁은 복도식 케이지 안에서 밀집 사육당하는 산란닭은 몸을 바닥에 비빌 수가 없어 스스로 진드기를 제거할 수가 없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진드기를 옮기는 감염원이 되고, 진드기 번식이 늘어나면 닭의 산란율은 떨어지고 폐사율은 높아지므로 산란계 농가에서는 살충제 사용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수의학계에서는 ‘닭을 사육하는 건물 전체를 비우고 방역과 세척 작업을 한 뒤 며칠간 비워두면 진드기가 없어지지만, 대부분의 농가에서 닭고기나 달걀 생산을 일시에 중지할 수 없어 교대식으로 일부만 돌아가며 방역을 하는 경우가 많아 진드기 완전 제거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 살충제 살포가 거듭되면서 기존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진드기까지 출현해, 정부가 허가한 닭 진드기 살충 성분(비펜트린 등 13종) 이외 독성이 강한 금지 살충제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살충제 달걀’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번에 경기 남양주 농가에서 검출된 피프로닐도 소·돼지·닭처럼 인간이 직접 섭취하는 동물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다량 섭취할 경우 간장, 신장 등 장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준치 이하 사용이 허용된 비펜트린 같은 살충제는 항생제나 백신과 달리 관리 대상이 아니어서 수의사의 처방 없이도 농약방이나 동물약품 도매상 등에서 손쉽게 살 수 있어 사실상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살충제 성분 검출 농가들은 뒤늦게 ‘진드기 때문에 닭이 괴로워하고 산란율도 떨어져 효과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사다 썼는데, 닭과 달걀을 모두 빼내고 난 뒤에 뿌렸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지만, 무항생제 축산물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의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닭 사육방식 재정립 필요
최소의 비용으로 대량 생산을 하기 위한 밀집사육 방식은 AI(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할 때마다 주범으로 꼽혀왔지만, 경제적 이유로 공장식 축사를 선택하는 농가를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최대한 야생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키우는 것이 좋지만 여건상 어려움이 많다.
일단 닭 진드기 유입을 막고 농장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밖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단계적으로 닭 사육 방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군민 한 모 씨는 “살충제도 문제지만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온갖 스트레스와 진드기에 고통 받는 환경도 문제고, 그런 곳에서 생산된 닭과 달걀이 사람 몸에도 좋을 리가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