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이 아니라 “지역분권”입니다!
“지방분권”이 아니라 “지역분권”입니다!
  •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7.07.03 13:15
  • 호수 6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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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표현으로서 언어는 개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원래 의미 외에도, 그 사람의 심리상태, 사고방식, 지적 수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반도 통일은 대박입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 했다, 대통령이 사용하는 언어로서 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걸핏하면 “날 믿어주세요(Believe me)”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그 말 때문에 그를 믿기가 더 어렵다는 미국인들이 많다.

언어는 개인의 내면 외에도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집단적 사고방식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전래 속담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대화와 소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왔음을 보여준다. 한국사회가 이런 속담을 더 이상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나 소통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낡은 언어를 폐기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언어도 계속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영화, 전화, 전기, 자동차 등의 단어도 100년 전에는 매우 생소한 새로운 용어였다. 한편 휴대전화가 일상화된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새로운 언어들이 크게 늘어났다. 인터넷, 이메일, 포탈, 카톡, 내비 등의 외래어 단어들은 이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휘가 되었다. 휴대폰, 단톡방과 같이 외래어와 우리말이 뒤섞인 기이한 신조어들도 많다.

일상 언어 중에는 부정확하지만 무심코 반복 사용하는 단어도 많다. 감자탕에 감자가 없고, 벼룩시장에 벼룩이 없다. 그러나 크게 문제삼는 사람들은 없다. 정확한 언어가 아님에도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된다면, 그 사안이나 사물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거나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다르면 안된다는 강박적 고정관념에서 한국인들이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언어를 대통령을 비롯해 전문가, 언론인, 사실상 전 국민이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이라는 언어가 바로 그것이다. 지방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어느 방면의 땅,” “서울 이외의 지역,”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의 기구나 조직을 중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등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기틀인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등으로 표기하고 있고,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에도 동일한 단어들이 사용되었다. 해방 후 입헌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지만, 한양과 지방을 구별하던 조선왕조의 봉건적 의식관념과, 경성의 총독부가 지방을 감시하고 관리하던 일제식민지의 압제통치 사고방식이 청산되지 못한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방”의 의미는 서울이나 중앙이 아닌 변방지역을 의미한다. 정부 조직 중에 “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경찰청”과 같이 서울도 지방의 일부로 간주하는 명칭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대학이나 지방발령과 같이, 지방은 서울을 배제한 기타 지역의 의미로 사용한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과정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적 격차가 심화되면서, 한국사회에서 지방은 여전히 기피하고 배제해야 하는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21세기 첨단 디지털 사회에 살고 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가면 성공이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면 실패라는 봉건적 고정관념이 불식되지 않고 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한다는 전래속담이 아직도 통용되는 사회이다. 지방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입시에 실패한 것이고, 지방발령은 좌천이나 퇴직압력을 의미한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17개 시도지사와 청와대에서 간담회를 하면서 대선공약인 지방분권을 개헌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방분권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우선 언어부터 바야 한다. 지방분권 대신 지역분권이라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중심과 변방의 권위주의적 수직적 사고방식 대신 모든 지역을 평등하게 존중하는 민주적 사고방식이 언어를 통해 표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방분권이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전 지역의 문제이며,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임을 전 국민이 인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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