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행기 1.상해로 떠난 ‘고행’
중국 기행기 1.상해로 떠난 ‘고행’
  • 변동빈 대기자
  • 승인 2017.05.01 19:35
  • 호수 6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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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각동상

오랜만에 취재가 아닌 여행을 간다는 생각으로 남도불교문화연구회원들과 상해 주변의 불교유적지 답사에 동행하기로 했다. 공무원, 의사,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은 종교적으로도 불교신자는 물론 가톨릭 신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열 네 명의 일행 가운데 두세 명을 제외하곤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

무안에서 상해까지 가는 여객은 동방항공으로 하루 한편 운행되고 있다. 12시 10 분에 무안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하루 한편 독점운행이라서 그런지 생수 한 병과 만두인지 교자인지 모를 처음 먹어보는 김 밥 모양의 간편식 한 개를 기내식으로 제 공했다. 상해 국제공항인 푸동공항은 1999년 개 항하였는데 부지면적 150만 평방제곱미터 로 지금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상해에서 목적지인 구화 산까지는 버스 로 일곱 시간이 걸렸다. 점심을 간편식으로 때운 우린 버스에서 소시지 몇 개와 소 주 몇 잔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중국의 고속도로 주변에는 날벌레를 쫓는 유도화가 심어져 있는데 야간 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 다. 고속도로의 폭은 보통 50미터나 되는데 이는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매연이 인근 주택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 이라고 한다. 3월 11일 상해는 목련과 유채꽃이 만발 해 있었다.

상해에서 서쪽으로 250km 거리는 넓이로 20만㎢인 광야로 한반도(22 ㎢)와 비슷한 땅인데도 산이 없고, 땅이 비옥하여 벼농사와 유채농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곳곳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노란 유채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 저장성(절강성)은 자동차와 전자 산업으로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고 한다. 상해가 있는 강서성은 인구가 7천만 명으로 넓이는 25만㎢인데 중국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지역이다. 버스로 일곱 시간을 달려 도착한 구화산 입구에 오계산색(五溪山色)호텔은 계곡에 서 내려오는 물과 꽃 그리고 나무가 어울 린 아름다운 호텔이다. 마침 벚꽃이 만개 하였고, 나뭇잎은 연두색을 띈 절경을 이루었다. 중국에서 관광객들이 먹는 음식은 보통 우리 돈으로 6천원 내외지만 여행사와 미 리 1만 원 정도로 계약하게 되면 푸짐하고 고급스런 식사를 할 수 있다. 피곤한 몸을 풀기 위해 전통 고량주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다음날 짧은 일정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답사를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린 것은 짙은 안개와 하루 종일 그치지 않은 비였다. 비 때문에 기온도 떨어져 여행은 처음부터 고행의 시작을 알렸다. 우산은 물론 비옷과 운동화에 덧신은 1 회용 장화로 중무장을 했지만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불교 4대 명산의 하나인 구화산은 안휘성 청양현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산봉우리가 99개, 면적이 100여㎢에 이르며, 정상인 십왕봉은 1,342m이다. 원래 이름은 구자산인데 이백이 멀리 뭇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소유이분기, 경산개 구화"이라는 명구를 써서 이름을 구화산으 로 고쳤다. 산에는 계곡폭포, 기암괴석과 오랜 동굴,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 산수 경치가 독특하고, 아름다우며 명승고적들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어 예로부터 동남 제일 산으로 불리고 있다.

 이곳 구화산 구화사는 신라 왕자였던 김 교각스님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이후로 99 세에 입적할 때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중국인들은 그를 지장왕보살로 추앙하고 있다.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높이 99미터의 지장보살 동상을 건립한 것도 김교각스님 이 99세까지 생존하였고, 구화산의 산봉우리가 99개라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화산 천태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이곳에는 김교각스님의 육신사리 가 모셔져 있다. 육신사리란 고승이 입적 한 뒤 화장을 하지 않고, 3년 동안 항아리 에 넣어둔 뒤 육신이 썩지 않으면 몸 겉 에 금박을 입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 이다.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은 당나라(719년) 때 왕권쟁탈에 환멸을 느껴 이곳 구자암, 연화봉 일대의 동굴 속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천대봉 일대에도 동굴이 있고 고배경 대는 스님이 송경하던 곳이며, 성전봉의 일숙암은 스님께서 하룻밤을 묵으셨던 곳 이고, 신광령과 동아봉 일대가 교각 스님께서 가장 많이 머문 곳이다. 구화산 민원협곡에는 민양화라는 사람 이 있었는데, 대부호로서 구화산 지역의 삼림을 가지고 있었으며 천성이 선량하고 남 을 돕기를 즐겼으며 벗을 널리 사귀었다. 어느 날 스님이 민 공 앞에 나타나 수행할 장소를 구하며 가사를 펼칠 만한 크기의 땅을 바라자 공은 얼마나 큰 땅이 될까하여 이를 허락하는데 스님이 가사를 공중에 뿌리자 구화산의 99개 봉우리를 모두 덮어 버렸다. 민공은 보살현령을 깨닫고 구화산 을 스님께 바쳤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인 도명을 스님의 제자로 바치고, 뒤이어 자기도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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