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서
결혼식장에서
  • 문틈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7.03.20 09:19
  • 호수 6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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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촌 동생의 아들 결혼식에 갔다. 하객이 무척 많다. 대부분 하객들은 내가 모르는 이들이다. 백부님의 자손 중에는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더러 만나기도 하고 지냈었는데 모두들 대처로 나가 살게 된 이후로는 거의 만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온 탓에 낯이 설게 된 얼굴들도 있다.

세월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버렸음이라. 제 이름을 대도 얼굴과 일치하는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 헤맸다. 게다가 사촌들의 자식들이야 본 적이 거의 없으니 모를 수밖에. 흩어져 살기 수십 년이 흘렀으니 희미한 기억을 탓해야 할까, 야속한 세월을 탓해야 할까.

다같이 시골에 죽 살았더라면 사촌 형제자매들은 물론이요, 5촌들까지도 친척 관계로 가깝게 지냈을 터인데, 나는 서먹한 분위기에 내내 감정 정리가 잘 안 되었다. 사촌들이 데려온 그들의 어린 자식들을 소개해주는데 나는 누가 누구인지 처음 보는 아이들이어서 다시 만난다고 해도 모를 것 같다.

이젠 5촌이면 남이 되는구나 싶었다. 옛날에는 뭐랄까, 친척이라면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영 딴판이다. 그저 같은 성을 쓰는 먼 친척 정도로 여겨지는가 싶다. 안타깝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요새는 종씨니, 본관이니, 항렬이니 같은 것들을 따져보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예전엔 여행 중에 만난 사람이거나 무슨 일로 대면한 사람이 같은 성씨면 본관이 어디요, 무슨 파요, 항렬이 어떻게 되오, 그러면서 내 할아버지뻘 되는구먼요 하고 인척 관계를 확인해보고 예를 갖추게 되는 풍습이 있었다.

요새는 그딴 것은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다. 그런 것을 따졌다간 꼴통 소리 듣기 딱이다. 명함을 주고받아도 이름이 한글로 쓰여 있으니 상대가 같은 성씨인지조차도 알 수 없다. 가령 정 씨라고 하면 몇 가지 다른 한자(漢字) 성을 쓴다. 한글로는 구별이 안 되니 동성인지 묻는 일도 없다.

혈연, 지연, 학연이 사회관계의 병폐로 작용하는 일이 많다 보니 그런 쪽에서 보면 잘 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혈연, 지연까지 내치는 것은 안타깝다. 타관에서 같은 핏줄,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면 그 아니 반가운가. 기차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내 핏줄, 내 고향 사람인 줄도 모르고 데면데면하다가 헤어지는 풍습이 내게는 참 삭막하게 보인다.

결혼식은 초현대식으로 진행되었다. 신랑이 연예인 옷차림 같은 것을 하고 신부와 하객들 앞에서 아이돌 춤을 추었다. 많이 연습한 모양새다. 과거의 엄숙한 결혼식과는 아주 다르다. 뭐, 그런 형식도 시속이 그렇다면야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결혼식에는 참석도 아니하고 축하금 봉투만 던져두고 곧바로 피로연장(식당)으로 가서 뷔페 음식을 먹고 돌아가는 하객들도 많다. 하기는 언젠가 어떤 결혼식에는 하객들의 상당수가 대리인(代理人)이 참석인 일이 신문에 난 일도 있다. 대리 하객을 보내 축의금 봉투를 전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온라인으로 축의금을 전하는 것으로 참석에 가름할지 모를 일이다.

결혼식 참석을 ‘품앗이’마음으로 가는 하객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좋게 보면 아름다운 풍속이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이웃 일본의 결혼식은 하객 참가수를 아주 친밀한 관계로 제한해서 결혼식장 탁자에 하객의 이름을 표시하고, 축의금은 보통 3만엔(3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매우 실질적이다.

이에 비해 우리 결혼식에는 일기친척은 물론 직장동료, 사업상 관련업체 등 많은 하객들로 북적인다. 꼭 참석을 아니 해도 무관한 사람들조차 이런저런 사정으로 안면을 피할 수 없어 참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각에선 청첩장을 ‘고지서’라고 부를 정도다.

이따금 내게도 전혀 모르거나 옛날 직장 동료로부터 청첩장이 날아오기도 한다. 요즘은 그것마저 생략하고 휴대전화로 '삐리릭'하고 문자로 날아온다. 참 난감할 때도 있다. 별로 친분도 없는 사이에서 날아오는 청첩장을 어찌할꼬.

이것도 신문에 난 이야기인데, 어떤 고관 자식의 결혼식 때 축의금이 2억원 가까운 돈이 답지되었다고 훗날 본인의 증여 관련 문제로 국회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이쯤 되면 결혼식이 한참 변질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내가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는 것이 내 자식들의 결혼식을 지나치게 단출하게 치른 것에 빗대어 뚱한 감정에서 나온 것은 절대 아니다. 결혼식 문화는 가까운 친지들의 진심어린 축하를 받으며 간소하게 거행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되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일 같기만 하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몇 백리길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다. 진심어린 축하 행렬이다. 그런데 결혼식에 갔다 와서 잠시 든 생각이 내가 내민 축의금이다. 손님 접대 음식이 생각보다 너무 호화스러워서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 모르겠다.

인구는 준다는데 결혼식장 예약은 몇 달 전에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튼 누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국가도 이 땅이 낳은 청춘들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면 안될까. 대통령 이름으로 축하카드라도 보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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