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를 하는 노인
퀵서비스를 하는 노인
  • 문틈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7.03.13 08:55
  • 호수 6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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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란 공평하지도 불공평하지도 않다. 평생 고생고생해서 자식들 다 여의고 이제 좀 허리 펴고 살만 하니까 덜컥 세상을 떠 난 사람들도 있다. 이게 무슨 짓궂은 운명 이란 말인가. 그런데 할 일없는 과학자들이 왜 그런가 연구를 했더니 고생고생한 사람 들 중에 ‘먹고 살만할 때 죽는’ 일이 일어나는 까닭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고 한다.

미국에서 20년 동안 실험 참가자들을 상 대로 감기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어떤 사람 들이 감기에 잘 걸리는지 연구했다. 왜 어 떤 사람들이 감기에 잘 걸릴까. 놀랍게도 연구결과는 남보다 더 부지런하고 성공하 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타입이 훨씬 더 병 에 잘 걸린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연구했는데 어려 운 상황을 견뎌내며 살아온 사람들은 면역 체계가 손상되고 백혈구가 동년배에 비해 조기 노화한다는 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 다. “인내심이 강하고 목표를 설정해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실수를 돌아보고 멀리 내다보며,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는” 우리가 알고 있 는 모범적인 인간상이 오히려 건강이 더 나 빠지더라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 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등의 말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기준으로 그 척도를 적용한 결과, 빈곤 노동자 계층의 흑인들 사이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더 나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노력하는 성향을 보이는 사 람들에게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높다는 사실도 밝혀냈 다. 즉, 불리한 조건과 노력하는 성격이 조 합을 이룰 때 이것이 건강에 확실한 악영향 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연구결과인가. 어려운 조 건을 타개하려고 불철주야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경우를 우리는 하나의 표상으로 그려놓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더 잘 병에 걸린다니 말이다.

이런 상관관계를 연구한 연구진은 또 ‘사 회 분열과 집단 간 갈등 및 불확실성 고조, 차별 강화’ 같은 것이 인간의 면역체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자연은 참 무서운 장난꾸러기 같다. 열심히 살려고 고 생한 자에게 주는 보답이 그렇게도 냉혹하 다니,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 이 성공의 결과물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니.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그런 질 문이 나올 법하다. 코티솔이 어떻고 아드레 날린이 어떻고 해서 면역력이 약화되어 간 난신고(艱難辛苦)를 겪고 인간성공 스토리 를 써낸 사람이 동년배에 비해 일찍 죽는 다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물론 연구는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어릴 적 너무 가 난하여 여러 조건이 안 좋은 상황의 경우에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고, 먹고 살만한 집에 태어나서 열심히 노력한 경우는 그렇지 않 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운명의 장난 같은 연구 결과 를 보면 사회적으로 경제의 양극화가 심한 경우 이런 현상을 부추기게 된다는 것. 그 러니까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사 람 개개인에게 해피엔팅 드라마를 쓰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나 라에 그대로 대입해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 그래봤 자 결과는 일찍 죽는 거다’라고 할 수는 없 는 일이다. 그 한 가지 연구가 무슨 철칙을 발견한 것도 아니고 그런 경우도 좀 있더라 는 것일 뿐이다.

나이 들어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했는데 그렇게까지 안했어 도 되지 않았을까.’하고 후회 아닌 후회를 하 는 때가 있긴 하다. 우리들 각자는 어디에서 쏘아올린 로켓을 타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구별에 도착한 ‘우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남미인들처럼 삼바춤을 추며 인생을 여 유작작하게 즐기면서 살지도 못하고, 방글 라데시인들처럼 소 두세 마리 있으면 부자 소리 들으면서 서로 화목하게 살지도 못하 고, 끊임없이 프로선수처럼 그라운드에서 뛰기만 하고 살아왔으니 이런 인생을 뭐라 고 하면 좋을 것인가.

어차피 한번 지구별에 왔다가 언젠가는 돌아갈 운명일진대 정신없이 살라고 째찍 질하는 사회와 조직과 교육을 의심할 필요 는 있을 것 같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어 떻게 살아도 한평생이다.

나는 최근에 미국의 과학자들이 연구한 것과는 달리 ‘악조건에서도 그냥 형편되는 대로 살아온’ 요즘도 퀵서비스를 하며 살아 가는 친척분을 만난 일이 있다. 올해 87세 인데 지금도 정구를 치고 등산을 한다. “난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공짜니까 얼마나 일 하기 좋은지 모르겠다.” 그분은 알통이 밴팔을 들어 건강을 자랑하시더니 “다만 돈이 없다는 것 말고는 행복하다.”고 하셨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이 지 구별에 왔다면 87세 어른의 말을 새겨들을 만하다. 그분은 퀵서비스로 한 달에 50만원 쯤 벌어 생계비로 쓴다고 했다. 대학을 나 오지 않아 번듯한 직장에 다닌 일도 없고, 더구나 국회의원 같은 것도 한 일이 없어 한 번도 누구에게 떵떵거리며 산 일도 없이 그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누가 이 분의 일생을 함부로 저울질할 수 있을까.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오직 자신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왔다. 과 학자들은 이렇게 사는 사람이 건강하고 행 복하게 사는 까닭을 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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