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감추지 못한 수백년 세월의 향기 '고불매'
봄, 귀로 듣는 '매화향' 가득 넘친다
차마 감추지 못한 수백년 세월의 향기 '고불매'
봄, 귀로 듣는 '매화향' 가득 넘친다
  • 오유미 기자
  • 승인 2011.03.17 18:09
  • 호수 3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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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350년 홍매화 이달 말~4월 초 절정

고매화(古梅花)를 아는가. 묵향 짙은 수묵화에 등장하는 기품 있는 옛 매화. 함부로 살찌지도 않고, 번성하지도 않으면서, 늙어서는 구불구불 오래된 가지 끝에서 향기를 품어 운치 있게 꽃을 피우는 우리 토종 매화 말이다.

곳곳에 매실 농장이 들어서면서 매화는 흔하디 흔한 꽃이 됐다. 하지만 매실 농장에 심어진 수 십 만 그루의 매화는,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가지마다 다닥다닥 꽃이 달리도록 개량한 것이다. 꽃을 보는 ‘매화나무’라기 보다는 열매를 기다리는 ‘매실나무’인 것이다.

기품 있게 피어나는 토종 매화는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 작은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고요한 마음일 때에야 비로소 느껴진다는 토종 매화의 향기는 과연 어디서 맡아볼 수 있을까. 늙었으되 향이 짙고, 소박하되 정갈한 그런 토종 매화는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옛 큰스님들이 모인 도량이라 해서 ‘고불총림(古佛叢林)’으로 불리는 백양사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문학적인 소재가 돼 왔던 350년 홍매화 ‘고불매’가 있다.

2007년 천연기념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불매의 ‘고불’이라는 말은 ‘인간 본연의 자세’라는 뜻으로 1947년 당시 스님들이 “부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에 ‘고불총림’ 결성했는데, 고불매는 고불총림의 기품을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백년이 훨씬 넘었을 백양사의 고불매의 품격은 맑고 산뜻하며 그윽하고도 은은한 향기를 지녀 봄을 재촉하는 매화향기로는 호남오매(백양사의 고불매, 선암사의 선암매, 가사문학관 뒷편 지실마을의 계당매, 전남대학의 대명매, 소록도 중앙공원의 수양매) 중 으뜸이다.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온 이름난 토종 매화들을 돌아보면 싱싱하게 물오른 젊고 풋풋한 매화의 화려함보다, 늙고 뒤틀린 가지에서 힘들게 피워 올린 환한 매화 한 송이가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비로소 알게 된다.

특히나 지난해 겨울처럼 추위가 혹독할 수록 매화의 향기는 깊어진다고 한다. 그런 것이 어찌 매화뿐이겠는가. 사람이 사는 일도 다르지 않다. 견뎌낸 시간 속에서 사람도 꽃 핀다. 시인 이성부가 그랬다.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이라고.

백양사 홍매화는 대웅전 정면에서 살짝 돌아앉은, 꽃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우화루(雨花樓) 곁에서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올해는 토종 매화의 개화가 늦어져 3월 말쯤 찾아가면 성성하게 꽃을 달고 있고, 4월초쯤 절정에 이뤄 온 절집을 향기로 가득 채울 것 같다고.

‘고불매’는 봄의 전령사로 이름이 높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봄을 먼저 낚으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매화나무 옆에는 ‘우화루’가 있다. 이곳은 방문객들이 원하는 대로 직접 우려내서 마시는 무료시음장이다. 차의 종류도 대여섯 가지로 다양해서 취양대로 골라 마실 수 있다.

우화루에서 봄 깊숙이 들어앉아 있으면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진한 매화향을 느낄 수 있고, 연두빛 찻물 속에서 봄바람에 비처럼 내리는 연분홍 꽃잎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매화향은 ‘귀로 듣는다’ 했으니 꽃비가 내리면 부처님의 설법이 들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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