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선생님... 영원한 사제동행
선생님, 우리 선생님... 영원한 사제동행
  • 오유미 기자
  • 승인 2009.05.14 14:30
  • 호수 2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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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영수는 참 순수했어. 예의바르고. 지금 모습 그대로야.”
“춘임이? 그 친구는 공부 잘하고, 착하고, 예쁘고, 나무랄데가 없었지.”
“주연이는 생긴 것도, 하는 행동도 예뻐서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예뻐했어.” 
“말썽꾸러기 ○○와 ○○는 밤에 지키고 있다가 장성역에서 잡아왔던 적도 있어. 지금은 잘 자라서 제몫들을 하고 있지. 그때 야단은 많이 쳤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피붙이같은 제자들이지.”
 
떠나보낸 옛사랑을 이렇게 그리워할까? 김영환 선생님은 오늘 만나기로 한 제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 이야기도 거침없이 술술 나온다.

30년이 지난 그때 제자들과 추억은 잊혀 지지도 않은 채 세월의 풍파에도 아랑곳 않고 화석처럼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선생님의 끊이질 않는 웃음처럼 펼쳐진다. 고고학자가 마치 오래된 유물의 흙먼지를 솔로 털어내며 드러내는 것처럼 30년이 훌쩍 넘어버린 오래된 기억들이 툭툭 튕겨져 나오는 이야기에 퍼즐조각 맞추듯이 완성되고 있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 9회 졸업생 정주연씨가 제일 먼저 직접 재배한 유기농채소를 들고 나타났다. 가끔씩 오다가다 뵙기는 하지만 작정하고 만나는 스승과의 만남인지라 나름 멋을 내고 왔다고 한다. 뒤이어 6회 졸업생 박영수씨가 나타났다. 모내기 하다가 선생님을 만난다니 열일 제쳐놓고 달려온 것이다. 6회 졸업생 임춘임씨는 지각했다고 혼날까봐 얼굴보다는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먼저 디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분명 대뿌리 매를 들고 혼내셨던 선생님은 대뜸 “춘임이 너, 건강이 안 좋았다는데 지금은 어떠냐?”며 제자 건강을 먼저 걱정하신다.

“1966년에 시작한 교직생활 36년 중 32년을 장성여중, 황룡중, 삼서중에서 근무하고, 그 중 황룡중학교에서만 12년을 근무했어요. 다른 제자들도 다 그립고 생각나고 그렇지만 유독 황룡중 제자가 더 애틋합니다.”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선생님은 황룡중 제자에 대한 애정을 쏟아내며 흘러가는 세월을 다시 그렇게 부여잡았다.

황룡중 제자가 더 애틋한 이유는 다른 학교보다 긴 시간동안 함께했던 것도 있지만 당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고 지금도 살고 있는 황룡면의 후배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신기하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는 도시와는 달리 상당 수 지역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기에 더 든든하다고 한다.

제자들에게는 선생님이 어떻게 기억될까? 임춘임씨는 “선생님은 늘 대뿌리로 만든 매를 들고 다니셨어요. 아마도 졸업생 중 선생님한테 안맞아본 학생이 없을거예요.” 일단 선생님이 나타나면 무서워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혹시나 하고 주변정리하고,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 눈에 띄기 전에 도망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한테 매를 맞았던 기억이 억울하다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학기초에 가정방문을 꼭 했어요. 학생들의 환경을 알아야지 맞춤식 교육을 할 수 있었고, 제일 큰 장점은 학생들 이름을 빨리 외울 수 있다는 겁니다” 김선생님은 당시 한 반에 70~80명의 학생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심지어 천명이 넘는 전교생 이름을 다 외웠다고 한다. “황룡중학교 학생들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었어요. 나에게는 형제이고, 자식같은 존재였어요. 그래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더 매를 들었는지 모르죠.” 선생님은 그렇게 제자들과 추억을 맞춰가며 지금도 다름없는 애정을 보였다.

“과수 농사를 많이 하시는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5천평이나 되는 땅에 오디, 감, 석류, 사과, 매실 등 농사일을 하는 선생님이 행여 건강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정주연씨가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쳤다.

선생님은 “장수를 하려면 맑은 공기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깨끗한 환경과 끊임없는 운동이 필요한데, 나는 일부러 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농사짓는 것이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과 같고, 또 거둬들인 과일들을 자식들과 필요로 하는 제자들에게 나눠주면 마음이 뿌듯하고 편안해지니 그것 또한 건강해지는 비결이 아니겠어요.” 올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카랑카랑 목소리로 옛 교사시절로 돌아간 듯 강의를 했다.

“돌아보면 학창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내 삶의 멘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내 삶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6회 졸업생 박영수씨의 말에, 이곳에서 두 번이나 12년에 걸쳐 교사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줘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고 행복해했다. 덧붙여 “지난번 황룡중 총동문회에서 주연이와 제갑이를 양쪽에 끼고 운동장을 돌때는 세상이 다 내 것인 것 같았다”고.

“선생님! 혹시 지금도 대뿌리 매를 가지고 계신가요?” 황룡중 6회 졸업생들이 졸업 3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며 박영수씨가 물어보자 “당연히 있지. 아주 매끈하게 다듬어놓은 것 2대나 있다”고 대답하시며 궁금해 하신다. 이에 임춘임씨는 “30주년 행사때 선생님 그 매 들고 꼭 오세요. 오셔서 말 안듣고 뒤로 빼는 애들,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애들 손바닥 좀 때려주세요.” “그래. 알았다” 선생님은 정말 매를 들고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함께 30년 전으로 돌아가실 태세다.

끊이질 않는 옛 추억에 선생님은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내가 한 잔 사지. 나 퇴직금 전부 연금으로 돌렸다.”며 제자들을 한바탕 웃게 만든다.  제자들은 “연금 받으시는 선생님이 있어서 좋습니다.”며 맞장구친다. 학창시절 무서웠던 선생님이 이제는 이렇게 친구가 되어있다. 친구가 되어서 서로를 감싸주고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속에 그 옛날의 늘 푸른 학교가 있고, 늘 푸른 정신이 있고, 늘 푸른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었다. 그들이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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